새 밀레니엄을 불과 1년 앞둔 99년 신년을 맞아 한국경제신문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 영국 파이낸셜타임스 등 한/미/유럽 최대경제지 편집국장
3각 대담을 가졌다.

작년 10월13일 한국경제신문 창간 기념대담에 이은 두번째 ''에디터즈
컨퍼런스(Editor''s Conference)''였다.

편집국장들은 이 대담에서 아시아 및 중남미 경제위기, 유로화 출범,
높아지는 무역마찰 파고 등 세계경제의 세기말적 변화의 양상을 진단했다.

이들은 올해가 세계경제의 대전환국면이 될수 있는 만큼 지구적 관점에서의
경제협력이 필요하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선진국들의 보다 개방적인 자세와 위기국들의 적극적인 개혁이 어려움을
풀어가는 열쇠가 될 것이라는 견해도 제시했다.

그리고 위기를 헤쳐나가기 위해 경제언론의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지 특파원들을 통한 대담을 3자대담 형식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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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석자 : 류화선 < 한국경제신문 국장 >
폴 스타이거 < 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 >
리처드 램버트 < 파이낸셜타임스 국장 > ]

<> 류화선 한국경제신문 편집국장 =최근 몇달 사이에 세계경제에 큰 변화가
있었다.

아시아경제는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나는 양상이다.

국제금융시장도 어느정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어두운 면도 많다.

브라질이 세계경제의 변수로 등장했다.

일본과 러시아경제는 여전히 암울하다.

미국경제도 아직은 방향이 분명하지 않은 것같다.

유로화 출범은 국제금융시장의 판도를 바꾸면서 세계경제에 불확실성을
한가지 더 추가했다고 볼 수 있다.

국제통상 분위기도 심상치 않다.

최근엔 엔화 강세로 아시아통화들이 덩달아 상승해 아시아 경기회복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호전과 악화요인들이 혼재해 있다고 할 수 있다.

올해의 경제상황에 따라 21세기 세계경제의 밑그림도 달라진다.

<> 리차드 램버트 파이낸셜타임스 편집국장 =21세기를 앞둔 지금 세계경제
흐름을 결정할 변수는 대략 세가지로 요약할 수 있다.

첫째는 미국경제의 성장지속 여부다.

미국의 경제성장이 이어져 소비가 계속 증가돼야 세계경제는 안정될 수
있다.

세계적으로 과잉설비와 과잉공급에 대한 우려가 높다.

세계경제의 불황우려가 가시지 않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미국의 소비확대는
대단히 중요하다.

두번째는 향후 몇년간 유럽경제에 많은 변화가 일어날 것이란 점이다.

통화통합으로 유럽의 경제흐름이 세계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더욱 커질 것
이다.

세번째는 일본의 역할이다.

일본금융권은 막대한 부실채권에 시달리면서도 한국과 달리 구조조정을
진척시키지 못하고 있다.

일본은 아시아 성장의 견인차다.

일본이 구조조정 노력을 게을리할 경우 몇년이나 더 버틸수 있을지 의문
이다.

<> 폴 스타이거 월스트리트저널 편집국장 =올해 세계경제는 그 어느때보다
불확실한 변수들이 많다.

미국과 유럽은 대체로 현재의 활황기조를 이어갈 것으로 본다.

문제는 아시아와 중남미경제다.

아직은 이들 지역이 위기에서 벗어났다고 낙관하기 이르다.

올해만 잘 넘기면 21세기에는 모든 분야에서 기술진보가 가속화돼 세계경제
가 한단계 도약할 것으로 확신한다.

특히 생명공학 분야에서 기술진보가 두드러질 것이다.

20세기 후반이 전자기술 혁명의 시대라면 21세기 초반은 생명공학의 시대다.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경제는 더 글로벌화되고 정치구조도 크게 달라질 것
이다.

경제의 글로벌화는 권위주의에 의존하던 후진적 정치체제가 발붙일 토양을
없앨 것이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경제와 정치 발전은 같은 방향으로 움직인다.

<> 류 국장 =기술혁신과 글로벌화는 기회이지만 위기의 원인이기도 하다.

아시아국가들이 연쇄적인 외환위기의 덫에 걸림으로써 글로벌화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가 증명됐다.

한국 등 아시아국가들이 최근의 고초를 교훈삼아 21세기를 성공적으로
준비하려면 유의해야 할 점이 많다고 본다.

정부는 작아져야 하고 기업의 기초는 더욱 튼튼해 져야 한다.

경쟁에서 무조건 이기는 것보다 더불어 발전하는 지혜도 가져야 한다.

<> 스타이거 국장 =21세기에는 각국이 공생하는 방향으로 경제시스템을
운영해야 한다.

이 점에서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에만 신경 쓸게 아니라 자체 소비
시장을 키울 필요가 있다.

21세기는 어느 한 쪽이 수출을 통해 일방적으로 이익을 취해선 안되는
시대다.

아시아국가들은 기술혁신과 글로벌화에서 제대로 효과를 보려면 경제력을
복원하는게 선결과제다.

이를위해선 새로운 시대에 걸맞는 경제관리 능력이 필수적이다.

아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지적이고 근면한 노동력을 갖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자산을 관리하는 방식이 변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과거 성장드라이브 시절의 정부주도 경제는 더이상 통하지 않는다.

글로벌화로 경영환경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 램버트 국장 =한국경제는 두가지 관점에서 글로벌화를 추구해야 한다.

효율성과 투명성이다.

한국경제는 과거 세계화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구조조정을
게을리했다.

그래서 외환위기를 맞은 것이다.

그러니까 세계화의 실마리를 경제구조의 효율화에서부터 풀어나가야 한다는
의미다.

국가정책과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는 것도 매우 중요하다.

세계경제 흐름에 동참할 수 있는 대외신용도를 키우려면 투명성확보는
기본이다.

<> 류 국장 =뉴 밀레니엄을 앞둔 요즘 글로벌화와 함께 지역 블록화 추세도
강하다.

유럽대륙에서는 유로화를 앞세운 견고한 유로랜드가 들어섰다.

미주대륙과 동남아에서도 블록화를 공고히 하려는 움직임이 역력하다.

블록화는 선악의 양면을 갖고 있다.

역내 결속을 통한 지역경제 발전은 세계전체 성장의 선순환을 자극하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그러나 지역블록이 배타적으로 운영될 때는 통상마찰 등의 부작용이 빚어
진다.

세계를 대립과 반목의 무대로 몰고 갈 수도 있다.

지역블록이 세계경제에 필요악이 아닌 필요선이 되기 위해선 개방적인
블록화가 바람직하다.

<> 스타이거 국장 =블록화에 대해서는 일단 긍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자본이동이 용이해지고 상품교역과 인적교류가 촉진돼 역내외 국가들에
공동의 발전기회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기에는 전제조건이 하나 있다.

블록이 외부 국가들에게 배타적이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이 점에서 유럽연합(EU)의 최근 움직임은 주목된다.

EU는 그동안 역외 국가들에 대해 차별적인 무역장벽을 쌓아 왔다.

이것이 시정되지 않을 경우 블록간의 통상마찰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될 수
밖에 없다.

이는 단일 국가 차원의 문제 때와는 비교도 안될 정도의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다.

<> 램버트 국장 =무역분쟁은 기본적으로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해서
해결해야 한다.

블록은 개방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며 각국가들은 자의적인 무역규제 조치를
풀어야 한다.

무역과 관련된 제도들도 투명해야 한다.

<> 류 국장 =한국은 아시아에서 가장 빠르게 위기에서 벗어나고 있다는
평가를 듣고 있다.

한국정부는 지난 1년동안 경쟁력없는 기업들을 퇴출시켰다.

불합리한 제도도 많이 시정했다.

전반적인 경제틀이 잡혀가고 있다.

경상수지가 개선되고 금리도 많이 떨어졌다.

환율도 안정국면이고 금융시장도 활기를 되찾았다.

물론 양산된 실업자에 대한 배려가 더 필요하고 구조조정 노력은 지속돼야
한다.

다소 성급하지만 한국경제에 서광이 비치고 있다는 생각이다.

<> 램버트 국장 =금융위기를 겪은 아시아국가 중에서 한국이 가장 빠른
회복세를 보이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은행부문의 개혁은 괄목할 만하다.

한국은 올해 경제를 더욱 개방된 쪽으로 이끌 것이고 이것이 외국인투자를
더욱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경상수지가 급속하게 개선된 점은 아주 인상적이다.

금리하락으로 대기업들의 금융비용도 크게 낮아질 것이다.

증권시장도 계속 괜찮을 전망이다.

제조업의 생산 역시 늘어날 것이다.

이런 점들은 한국경제의 회복을 알리는 좋은 징조다.

그러나 아직 장애물도 적지않다.

우선 한국수출의 주요 시장인 미국경제와 아시아경제가 불안하다.

한국의 수출여건이 불투명하다는 뜻이다.

기업들의 막대한 빚도 큰 문제다.

이때문에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은 필수적이다.

최근의 구조조정으로 기업의 무분별한 확장은 억제되고 있다.

그동안 차입에 의존해 사업을 확장해온 한국기업들은 활황세에 있는 증시를
이용해 주식을 매각하거나 증자를 통해 빚을 갚아야 할 것이다.

재벌 개혁도 관건이다.

정부가 압력을 넣고 있지만 개혁진행 속도는 그다지 빠른 것같지는 않다.

이런 장애물들을 넘지 못하면 2-3년안에 다시 97년의 상황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

<> 류 국장 =미국은 사상 최장기간의 경기호황을 누리고 있다.

성장률 고용 물가 금리 등 거의 모든 지표가 양호하다.

활발한 소비를 통해 세계경제를 떠받치는 "세계경제 최후의 소비자"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해내고 있다.

그러나 최근 미국이 무역적자 확대를 빌미로 대외통상압력을 강화하고 있는
것은 우려할 만한 일이다.

경제위기에서 완전히 탈출하지 못한 아시아국가들에 대해 대미 수출을 일정
선에서 규제시키려는 움직임도 감지된다.

21세기가 상생의 경제가 되려면 여력있는 선진국들이 더 인내해야 한다.

경제위기국들이 안정될 때까지 시장을 활짝 열어 두는게 세계전체가 공영
하는 윈-윈게임이다.

<> 스타이거 국장 =미국 무역적자는 크게 걱정할 수준이 아니다.

적자문제를 지나치게 과장해 보호무역주의로 연결시키려는 움직임이 없지는
않으나 크게 우려할 정도는 아니다.

미국인들은 경기호황에 만족하고 있다.

다른 경제이슈는 부차적으로 여기고 있다.

아시아 국가들이 외화를 확보하기 위해 수출에 적극 나서는 것은 현 단계
에서 불가피할 것이다.

그렇지만 궁극적으로 아시아도 내수시장을 키워야 한다.

수출 일변도의 경제시스템을 고수할 경우 언젠가는 미국과 심각한 통상마찰
을 겪게 될 것이다.

경제위기국들은 미국경제에서 두 가지 교훈을 얻어야 한다.

기술혁신과 적응력이다.

미국경제는 지난 10년간 인터넷 혁명 등 기술혁신을 통해 정보통신 분야에서
확실하게 경쟁우위에 섰다.

미국경제는 10여년 전만 해도 "끝장났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경쟁력이
형편없었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좌절하지 않고 변신을 거듭하는 불굴의 적응력을 보여
왔다.

21세기 세계경제에 절실히 요구되는 것중의 하나가 바로 이런 적응력이다.

<> 류 국장 =세계적으로 인수합병(M&A)을 통한 기업의 대형화 바람이
거세다.

21세기에는 업종별로 3위이내 기업들만 살아 남고 나머지는 큰 회사에
흡수되거나 정리된다는 "빅3론"이 설득력을 더해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반도체 자동차 가전 석유화학 등 주요 업종에서 대기업 그룹간
빅딜 형식의 변화가 진행중이다.

세계적인 대형 인수합병 바람은 득실 양면성을 갖고 있다.

해당기업의 경쟁력이 강화되는 반면 실업자가 발생하고 시장독점의 폐해도
우려된다.

<> 스타이거 국장 =세계적인 추세로 볼때 경쟁기업간 결합을 통한 세력
불리기는 불가피한 선택이다.

21세기에는 경쟁력을 갖춘 소수의 기업들 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명제에도
공감한다.

다만 거대 기업간의 M&A로 시장 독과점의 폐해가 나타나서는 안될 것이다.

이는 한국만이 아닌 세계 모든 나라들의 공통된 문제다.

경제를 생산자만이 아닌 소비자의 입장에서도 바라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기능은 작을수록 좋다.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에서 가장 바람직한 정부의 역할을 두고 한국의
지식인들 사이에서 활발하고 진지한 논의가 있어야 한다.

특히 이 과정에서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 램버트 국장 =주변상황이 위기일수록 신문은 개방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자유로운 정보의 흐름이 상황을 풀어가는 구심점이 될 수 있다.

언론의 생명은 정확성이다.

신문은 진실을 말하는 도구다.

국민들이 신문에 난 정보와 분석을 객관적이라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대개의 경제위기는 정보의 투명성 부족에서 비롯된다.

정부가 하지못하는 역할을 언론이 해야 한다.

한국에서의 위기극복 노력도 한국경제신문이 주도해 주길 바란다.

< 정리=이정훈 기자 leehoon@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9년 1월 1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