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대국의 침몰".

일본 전자업계에 비상이 걸렸다.

도시바 히타치 소니 등 대형업체들의 손실은 더이상 견뎌내기 힘든
상황이다.

이익을 내는 상품은 하나도 없다.

이들 업체의 "도산" 가능성까지 입에 올리는 분석가들도 나온다.

욱일승천하는 미국업체들과 비교하면 수모에 가까운 대접이다.

한때 최고의 기술을 갖고 세계를 호령하던 전자왕국 일본.

그 주춧돌인 대형전자업체들이 맥을 못추고 있는 것이다.

도시바는 올 상반기(3-9월) 5천3백30만달러의 손실을 기록했다.

매출은 작년같은 기간보다 12% 줄어든 1백19억달러를 올리는 데 그쳤다.

히타치의 적자규모는 10억달러.

올 한해동안 20억달러 이상 손해볼 것으로 예상된다.

소니 역시 순익이 62%나 줄어들 전망이다.

NEC 미쓰비시 후지쓰등은 적자를 안내는 것이 최대의 목표가 되고 있다.

일본 대형전자업체들이 최고의 권좌를 위협받는 이유는 간단하다.

돈을 벌어주는 제품이 없다는 것이다.

물론 신상품은 엄청나게 쏟아낸다.

도시바만해도 작년에 12개의 새 제품을 선보였다.

DVD플레이어 디지털TV세트 등 모두 최첨단상품이다.

그러나 엄청난 자금을 투입한 제품이 시장에서 얻은 반응은 냉소뿐이었다.

왜 이렇게 됐을까.

구조적인 문제가 지목된다.

여러가지 이유가 복합된 결과지만 무엇보다 잘못된 기술개발(R&D)전략이
꼽힌다.

일본의 전자관련 R&D투자액은 80%가 기업의 주머니에서 나온다.

게다가 62%는 특정 상용제품 개발에 쓰인다.

응용범위가 넓은 노하우등을 얻는 데 들어가는 돈은 24%정도다.

기반기술 개발에는 14%정도만 투입된다.

반면 미국의 경우 전체 R&D비용중 64%를 정부가 부담한다.

이것은 대부분 기반기술이나 노하우를 개발하는 데 쓰인다.

미국기업들은 정부의 돈으로 개발한 응용기술로 제품 상용화기술을
개발한다.

결국 일본업체들이 택한 것은 미국에서 개발된 노하우를 받아서 상품
개발에 응용하는 패턴이었다.

이는 기술개발속도가 빠른 현대에 와서는 경쟁력을 깎아먹는 요인이
되고 있다.

"새로운 기능"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의 제품 개발경쟁이 본격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세계최고의 기술을 갖고 있으면서도 히트상품을 내지 못하는 결정적인
까닭이다.

미국과 일본 전자업체의 주식가격변동은 이같은 차이를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작년 일본 전자업체의 주식싯가총액은 3천6백20억달러.

8년전인 90년(3천8백억달러)보다 5% 줄었다.

반면 미국 10대 정보통신업체의 주식싯가총액은 같은 기간동안
2천30백억달러에서 9천1백50억달러로 3백%나 불었다.

물론 일본에도 잘나가는 전자업체는 많다.

니치아 무라타등 전문화된 업체들이다.

이들은 한우물만 파 독자적인 노하우와 기술력을 축적하고 있는 회사다.

그러나 이들 업체들이 일본 전자산업계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미약하다.

대형 전자업체들이 경쟁력을 회복하느냐 못하느냐에 전자왕국 일본의
운명이 달려있다는 얘기다.

< 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6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