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기술정책연구소(소장 주문영)는 공업기반기술개발 자금을 받아 개발한
우수기술 12건을 TOP 12로 선정, 23일 전경련회관에서 시상식을 갖는다.

상품화 기반기술 공동연구등 3개 부문에 걸쳐 선정됐으며 대상은 상품화
부문에서 에이스테크놀로지가 개발한 PCS 기지국용 필터 및 듀플렉서에
돌아갔다.

기반기술부문에서는 국제약품공업이 개발한 세파로스포린 항생제 세푸록심
합성제조기술이 금상을, 공동연구에서는 조선대가 세신선라이즈 등과 함께
개발한 선각부재 플라스마 절단 자동화시스템이 금상을 각각 수상하게 됐다.

작년과 올해사이에 개발이 완료된 3백여개 공기반 연구과제 중에서 선정된
이들 기술은 기업들이 IMF 불황의 파고를 넘는데 버팀목 역할을 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TOP 12 선정을 계기로 우수기술 개발에 산파역할을 하는 국가 R&D자금
지원시스템에 대한 관심이 새삼 높아지고 있다.

우수기술 개발을 돕는 정부 R&D지원사업이 많긴 하지만 국가 전체적으로는
이들 사업의 연계성이 부족,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많다.

기술개발 당사자인 기업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이를 측면지원하는
정부의 R&D자금 지원시스템이 부처별로 제각기 진행돼 비효율을 양산하는
현상황에서는 우수기술 개발의 확산은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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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연구개발(R&D)자금지원 시스템을 손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처별로 지원하는 개발자금의 연계성이 부족, 예산 집행의 비효율을 낳고
있는 현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은 늘 있어왔다.

하지만 IMF(국제통화기금) 관리체제가 몰고 온 불황은 점차적인 개선이
아니라 당장 뜯어 고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예산낭비의 최소화가 주요 과제로 떠오른데다 기업 연구비의 정부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구조조정 과정에서 연구비를 삭감한 기업들은 부족한 재원마련을 위해
정부자금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산업기술정책연구소가 R&D투자를 많이 하는 30개 기업을 대상으로 한 최근
조사에 따르면 IMF관리체제이후 83%가 투자규모를 줄였고 절반가량은 작년
보다 연구비를 10~20% 삭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따라 기업들의 정부자금 신청이 올들어 크게 늘고있다.

산자부의 공기반 자금의 경우 올해 경쟁률(신청과제 대비 지원과제 비율)이
76%로 87년 지원이 시작된 이래 사상최고치를 기록했다.

정보통신연구개발자금 등 다른 R&D자금도 대부분 경쟁률이 작년보다 올해
높아지는 추세를 보이고있다.

보다 효율적인 정부의 R&D 자금지원 시스템이 요구되는 배경이다.

현 시스템의 비효율성은 부처별 자금집행이 연계성 없이 이뤄지고 있는데서
비롯됐다는 지적이 많다.

중복투자의 여지가 많다는 얘기다.

올들어 과기부 산자부 농림부 건교부 정통부 중기청 등 7개부처가 11개
사업을 통해 지원중인 R&D자금만 1조1천억원에 이른다.

각 부처는 나름대로 차별화돼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자금의 수요자(기업)보다는 공급자(부처)입장에서 바라본
시각이라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더욱이 부처별 유사 지원과제를 걸러내는 장치도 미비하다.

3~4개 부처로부터 같은 과제로 자금을 타내다 적발된 기업이 적지 않은
것도 이때문이다.

그렇다고 기업들만 탓할 수 없다.

여러 부처로 예산이 쪼개지다 보니 건당 지원액이 적어 유사과제 신청서를
들고 여러 부처를 기웃거려야 하는게 현실이다.

한국산업디자인진흥원이 내년부터 지원업체를 줄이고 지원액을 늘리기로
한 것은 그점에서 시사하는 바 크다.

국가 R&D자금지원 시스템에 적용할 만한 시도라고 업계는 지적하고 있다.

기술개발 상품화 시설투자 등 단계별로 정부지원이 물흐르듯이 연결되지
못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정부 지원으로 유망기술을 개발, 좋은 평가를 받아도 시설자금을 받으려면
별도의 복잡한 평가절차를 거쳐야 한다.

우수 개발기술에는 가산점을 주기도 하지만 실질적인 연계효과는 적다는게
업계의 지적이다.

연구비를 배정 받아도 담보 등이 부족, 사용하지 못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공기반자금과 기술혁신개발자금 등 출연형태로 지원되는 자금을 제외한
대부분의 자금중 상당액이 이런 이유로 은행 문턱에 걸려 기업에 흘러가지
못하고 있다.

최근 1억9천만원의 개발자금을 배정받은 기계장비업체인 M사는 신용보증기관
에서 한도인 1억8천만원까지만 보증을 서겠다고 하는 답변을 들어야 했다.

이 회사의 이모사장은 "배정된 자금중 1천만원을 안받자니 제출서류가 많고
번거롭다"며 "한도초과액이 미미한데도 이를 보증서지 못하겠다는 경직된
금융관행 앞에서 기술개발 의욕이 생길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연구과제를 평가하는 총괄주관기관이 연구를 집행하는 이해하지 못할 일도
벌어지는게 한국 R&D자금 시스템의 현실이다.

선도기술개발사업(G7프로젝트)과 청정기술개발사업의 상당수 과제가 이런
문제를 안고 있다는게 모 연구관리기관 관계자의 전언이다.

제대로 평가가 이뤄질 턱이 없다.

독립적인 전문 연구관리기관을 집중육성해야 한다는 지적은 그래서 나온다.

부처별로 산재된 연구관리기관의 통합론이 일각에서 거론되는 것도 이때문
이다.

기관을 합치지 않더라도 범부처차원의 연구관리위원회(가칭)를 두고 자금을
집행토록 하는 것도 대안으로 제기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범부처적으로 기술계통도를 그려 놓고 필요한 기술개발에
자금을 배분할 수 있게 된다.

중복투자를 막을 수 있고 국가의 기술개발 방향을 전략적으로 설정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이 과정에서 시장진입에 가까운 현장기술 중심으로 자금지원이 이뤄지고
있는 세계적인 추세를 적극 반영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EU(유럽연합)의 공동연구개발사업인 유레카사업의 경우 올들어 지원대상
기술이 고도화됨과 동시에 현장기술 위주로 바뀌고 있다.

외국기술의 국산화뿐 아니라 2010년 또는 2030년에 선진국을 앞지를수 있는
차세대신기술 개발전략도 범부처 차원에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현 시스템은 또 국가 표준정책과의 연계성 확보도 시급한 상황이다.

국립기술품질원 이은호 연구관은 "일본은 작년부터 정부지원 연구비내에
국제표준 제안비용까지 포함시켰다"며 기술정책과 표준정책의 연계를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표준정책뿐 아니라 산업정책 역시 국가 R&D자금 지원시스템과 연계돼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불황이라는 혹독한 시련은 우리에게 신 R&D자금 지원 시스템의 구축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부처 이기주의를 과감히 떨쳐 버리는데서 시작할 수 있다는게 전문가들
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 오광진 기자 kjoh@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11월 23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