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미국대통령과 보리스 엘친 러시아대통령은 이달초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정상회담을 가졌다.

러시아가 모라토리엄을 선언한지 2주일만이었다.

아시아에서 건너간 러시아금융위기의 불이 세계로 번질지 모른다는 위기감이
고조된 때였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대통령은 그래서 러시아로 날아갔다.

그러나 언론은 별로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냉전시대인 80년대였으면 회담기간내내 두 정상의 일거수 일투족이 관심을
끌었겠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둘 다 큰 힘을 못쓰는 "부상병"인 때문이었다.

클린턴대통령이나 옐친대통령이나 지도력에 큰 상처를 입었다.

클린턴은 도덕성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은 상태이고 옐친은 국가를 부도낸
장본인.

둘 다 자신을 돌보는 데도 버거운 상태다.

과감한 결단을 내리고 자국민과 세계를 향해 "따라오라"는 강력한 리더쉽을
발휘할 수 없는 처지다.

세계는 이처럼 리더쉽 부재현상을 겪고 있다.

세계 금융공황을 우려케하는 최근 사태가 발생한데는 리더쉽 부재도 한가지
요인으로 꼽을 수 있다.

세계 최강국인 미국의 경우 클린턴대통령은 탄핵의 위기에 몰려있다.

애송이 인턴여직원과 불장난을 하고, 국민들에게 그 사실을 숨기며 거짓말을
한 것이 들통났다.

적어도 지도력의 바탕인 신뢰를 완전히 상실했다.

국민들에게서 믿음을 얻지 못하는 대통령이 세계에 대해 리더쉽을 발휘할
수 없다.

지금 금융위기가 아시아에서 러시아를 거쳐 미국의 앞마당인 남미로 번지고
있지만 세계 최강국 대통령으로서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옐친 러시아대통령은 이미 정치적으로 실권을 빼앗긴 처지다.

모라토리엄선언으로 파산한 국가 지도자일 뿐이다.

의회에서는 탄핵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총리 하나 세우는데도 한달 넘게 걸렸다.

그것도 자신이 처음 지명한 총리가 의회로 부터 거부되는 수모를 겪은 뒤다.

의회와 야당에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이빨빠진 호랑이신세다.

일본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오부치 게이조 내각의 지지율은 16%선.

한달전의 출범때 보다 9%포인트나 떨어졌다.

사상 네번째로 낮은 지지율이다.

내각이 새로 만들어진 뒤 한달만에 지지율이 20%밑으로 떨어지기는 일본의
현대 정치사에서 처음이다.

오부치총리는 총리자리에 오를 때도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했다.

자민당내 파벌간의 협상에서 만들어진 총리다.

국민들은 그를 <>지도력이 없고(45%) <>경기대책도 신통치 않으며(37%)
<>언동을 신뢰할 수 없다(20%)로 평가하고 있다.

독일을 통일시킨 헬무트 콜 독일총리는 오는 27일의 총선에서 재집권이
불투명한 상태다.

높은 실업률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다.

옛동독지역의 지지자들이 이탈하고 있는 것도 문제다.

16년간의 장기집권이 끝날 위기에 처해있다.

여론조사에서 경쟁자인 사민당의 슈뢰더 후보에게 계속 뒤지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아시아지역에서는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전대통령이 물러난 뒤 리더쉽의
공백이 커지고 있다.

수하르토는 부패와 독재로 대통령직에서 쫓겨났지만 국제사회에서는
영향력있는 정치인이었다.

한때 비동맹세력의 구심점이기도 했다.

마하티르 말레이시아총리가 있긴 하지만 세계적 지도자라기 보다는
"문제아"로 해외에서 인식되고 있는 처지다.

말레이시아 밖에서 거래되는 주식거래는 인정하지 않는 등 국제사회로부터
고립를 자초하고 있어서다.

국제투기자본에 대해 온갖 비난을 퍼붓지만 공허한 메아리일 뿐이다.

지금 세계경제는 2차대전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그러나 이를 앞장서서 헤쳐나갈만 글로벌 지도자가 없다.

지구촌 리더쉽의 공백상태다.

이때문에 경제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국제공조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14일 열리는 서방선진 7개국(G7)회담이 한때 무산될 위기에 놓였던 것이
대표적 예다.

미.일.독.러 지도자들의 국내입지가 약해진 탓이다.

지금 세계에는 총대를 멜만한 걸출한 지도자가 없다.

이같은 리더십 부재로 세계경제위기의 불길은 점점 거세지고 있다.

< 조주현 기자 forest@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9월 14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