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당국이 급해졌다.

무슨 수를 쓰더라도 불황 탈출구를 찾아야 하기 때문이다.

둥젠화(동건화) 홍콩행정수반은 지난달 22일 "긴급"경기부양책을 내놓았다.

재정에서 총 4백40억달러를 부담하는 내용이다.

12개항의 "긴급"실업대책이 발표된지 불과 19일만에 나온 추가조치였다.

홍콩정부가 얼마나 다급해 하고 있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것도 모자라 둥젠화는 "이번 긴급부양책으로도 가까운 시일내에 경기가
회복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불황의 터널이 적어도 2~3년 더 지속될
것이라고 실토할 지경이다.

홍콩경제의 비상구는 정녕 없는 것인가.

이와관련, 요즘 홍콩에서는 크게 세가지 경제위기 극복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첫째는 재정지출을 확대하는 것이고 둘째는 중국에 지원을 요청하는
방안, 셋째는 페그(peg)제를 포기하고 홍콩달러의 평가절하를 용인하자는
것이다.

이중 재정지출을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은 전형적인 케인지언식 처방이다.

홍콩은 다른 나라의 헌법에 해당되는 "기본법 제107조"에 의해 균형예산을
원칙으로 못박아놓고 있다.

하지만 경기침체가 가속화되면서 이 원칙을 포기하고 과감히 적자재정을
편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들은 특히 홍콩정부가 1천억달러에 가까운 외환을 보유하고 있고
외채가 전혀 없는 건전재정인 점을 강조한다.

재정의 기초가 탄탄하니 일시적인 적자재정을 감당할 여력이 충분하다는
논리다.

이번에 홍콩정부가 내놓은 <>정부보유 토지매각 중단 <>이자소득세 면제
<>중소기업 융자확대 등의 경기부양책도 사실상 이런 요구를 부분적으로
수용한 것이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미흡하고 경기를 살리려면 보다 적극적인 재정정책이
필요하다는게 경제계의 지적이다.

홍콩과 중국은 정치 경제적으로 순망치한의 관계라는 점에서 중국에
경기부양 지원을 요청하는 방안도 거론되고 있다.

이 주장은 중국정부가 지난해 주권반환을 앞두고 약 3백억달러를 투입,
홍콩의 주가와 부동산 가격을 떠받쳤던 사례도 있어 더욱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번 주권반환 1주년 기념식에 장쩌민(강택민)중국주석이 직접 참석하는
것도 홍콩측과 경기부양을 논의하기 위한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이 경우 홍콩이 요청할 것으로 예상되는 지원조치는 <>중국 주택건설
시장에서 홍콩기업 우대 <>중국기업의 홍콩증시 상장 확대 <>홍콩과
중국내륙과의 협력증대 등이다.

하지만 재정지출확대나 중국의 지원은 모두 문제점을 안고 있다.

재정지출의 경우 이미 98~99년도 예산이 집행중이고 99~2000년 예산에
반영하는 것은 시간적으로 너무 늦다.

또 중국의 지원도 과거 경험상 그 효과가 캄푸르 주사처럼 일시적일
뿐이다.

그래서 최근 급부상하고 있는게 "페그제 해제" 주장이다.

홍콩달러는 요즘 미화 1달러당 7.78달러로 묶여 있는데 이를 풀어
홍콩달러의 절하를 용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들이 내세우는 논리는 이렇다.

"경기를 자극하려면 금리를 낮추어 신용경색을 푸는게 지름길이다.

그런데 홍콩통화당국(HKMA)은 페그제때문에 금리정책을 쓸 수 없는
입장이다.

따라서 홍콩경제의 근본적 해결책은 페그제를 해제하는 길 뿐이다"
(앤디 쉬 모건스탠리 아시아지역 부총재).

이들은 또 페그제를 계속 유지할 경우 홍콩달러의 과대평가로 인해
<>관광객 감소 <>상품 가격경쟁력 저하 <>홍콩달러의 환투기 노출 등
부작용도 우려된다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페그제 해제 역시 그렇게 간단치 않은 문제다.

반대론자들은 홍콩의 소비물품은 대부분 수입에 의존하고 있어 페그제
해제가 오히려 물가상승을 초래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홍콩달러가 과대평가돼 관광객이 줄고 있다지만 실제로 줄어든 관광객은
아시아위기국들의 손님인 만큼 그것도 이유가 안된다고 강조한다.

여기에다 페그제 해제에는 다른 나라들도 반대하고 있다.

페그제가 해제돼 홍콩달러가 절하되기 시작할 경우 걷잡을 수 없이
떨어질 것이고 다른 아시아 국가들은 이번엔 "홍콩발 위기"를 겪게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반대론에도 불구하고 페그제 해제 주장은 점점 힘을 얻어가고
있다.

지난 5월과 6월 메릴린치사가 홍콩의 펀드매니저들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가 이를 잘 보여준다.

5월조사때는 페그제 해제가 필요하다는 답변이 전혀 없었는데
6월조사에서는 필요하다는 응답이 30%나 됐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페그제 해제설 속에 홍콩의 선택이 주목된다.

< 임혁 기자 limhyuck@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7월 1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