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일 났어요. 연체가 엄청 됐네요"

요즘 은행원들은 날마다 빚독촉을 해댄다.

겁을 주고 달래고 다그쳐본다.

빚독촉에 이골이 난 직원들을 위로하기라도 하듯 자동응답기(ARS)까지
등장했다.

겉으로 봐서는 멀쩡한 은행.

속을 들여다보면 성한데가 없다.

빌려준 돈의 15%가량이 정상이 아니다.

6개월이상 연체 등 질이 나쁜 일반은행대출(무수익여신)은 97년말현재
무려 22조6천4백27억원.

1년전 12조2천2백55억원보다 10조여원이 늘었다.

더 심각한 것은 3~6개월동안 이자를 못받는 대출금(요주의여신)이다.

8개 시중은행(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 외환 신한 국민은행)만도 20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나머지 은행들은 쉬쉬한다.

그 파괴력을 알기때문이다.

그러나 국제금융계가 이 성역을 파고들고 있다.

은행들은 국제통화기금(IMF)측 성화로 추정손실(회수가 불가능해 떼인 돈)
회수의문(사실상 떼인돈) 등 "부실여신"에 고정(부도나 법정관리, 6개월이상
연체대출)까지 포함시켜 "무수익여신"을 발표했다.

IMF의 기세로 봐 조만간 요주의여신까지 포함시키는 것은 시간문제일뿐이다.

IMF 산하기관인 국제금융공사(IFC)는 이미 하나 장기신용은행에 그렇게
요구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은행들은 그동안 겉으로 드러나는 무수익여신을 줄이기 위해 자의반타의반
으로 요주의여신쪽을 불렸다.

넘치는 부실로 국영화된 제일 서울은행을 빼고 총여신대비 비정상여신이
가장 많은 상업은행을 보자.

이 은행의 무수익여신은 1조4천5백억원.

그러나 요주의여신은 무려 3조4천억원에 이른다.

여기에는 주공이 인수한 한양계열에 대한 여신 7천억원도 포함돼 있다.

무슨 연유인지 지난해 2월 26일 개정된 자산건전성분류기준은 한양여신같은
정부투자기관 보증분을 요주의로 간주했다.

외환(3조8천억원) 한일(3조4천억원) 서울(2조8천억원) 등도 무수익여신보다
요주의여신이 더 많은 경우다.

문제는 은행들이 이 지경에 이르렀는데도 비정상여신을 감축하기 위해
빚독촉같은 "고전적" 방법 외에는 이렇다할 대책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한마디로 둔하다.

기껏 대책이라고 내세우는게 "성업공사가 부실채권 13조원어치를 사주기로
했으니 많이 파는 것"이라는 식이다.

부실채권에 투자하는 "벌처펀드"도 요즘 구원의 손길로 부상했다.

하지만 아쉬운 은행들보다 벌처펀드쪽이 더 부지런히 뛰는 편이다.

은행들은 아직 냉담하다.

"벌처펀드에 손벌릴 때는 아니다"

괜한 자존심이 발동한 것이다.

그러나 시간은 은행편이 아니다.

올들어 1~2월에만 요주의자산은 50%가량씩 증가했다.

앞은 더 컴컴하다.

"계절적 추세니 하는 통계는 이제 모두 깨졌습니다. 막막합니다. 모두
팔짱만 끼고 있는데 꼭 누가 늦게 죽느냐 하는 싸움같습니다"

개인과 중소기업대출이 많은 탓에 아직까지는 괜찮다는 소리를 듣는
국민은행쪽 얘기다.

"금융인에 의한 금융정상화"는 불가능한 것일까.

< 허귀식 기자 >

( 한 국 경 제 신 문 1998년 4월 2일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