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최근 몇년동안 의과대학이 많이 신설되어 이제는 40개교나
되었다 한다.

의과대학을 제대로 만들려면 엄청난 물적투자와 함께 우수한 교수를 많이
확보하여야 하며 부속병원도 있어야 한다.

또한 의사의 수도 면밀히 검토해서 국민보건을 위해서 그만한 숫자가
필요한지를 알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나 최근 많은 대학들은 의과대학이 있어야 대학의 명성이 높아진다는
생각으로 무리하게 의과대학을 신설하려는 경향이 있다.

어느 대학이 의과대학에 너무 많은 투자를 했기 때문에 서울캠퍼스를
팔지 않을수 없었던 것은 잘 아는 이야기다.

미국의 프린스턴 대학, MIT, 그리고 캘리포니아 버클리대학 등은 세계적인
대학들이지만 의과대학을 가지고 있지 않다.

필자가 작년에 일본 게이오대학을 방문했을 때 그 대학 총장은 나에게
절대로 의과대학을 만들지 말라고 하였다.

부속병원에서 수입이 있어도 대학전체에 재정적 기여는 전혀 없고 오히려
부담이 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국립대학들의 부속병원은 모두 적자운영을 하고 있다고 한다.

지난 96년 우리나라 의과대학들에서는 2천7백39명의 졸업생을 배출했다.

인구 10만명당 6.1명꼴이다.

미국은 1만5천3백68명의 의사를 배출했는데 인구 10만명당 5.8명이다.

그러나 독일은 1만5천8백24명으로서 10만명당 무려 19.5명이다.

즉 우리나라와 미국에 비해서 3배나 많은 의사를 배출하기 때문에 의사들이
취업난을 겪고 있다 한다.

일본은 6천7백16명으로 인구 10만명당 5.3명으로 우리보다 적다.

이렇게 볼 때 우리나라는 몇년후 신설 의과대학에서 졸업생이 더
배출되므로 현상태에서 더 늘리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본다.

훗날 의사가 좀 더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기존의 의과대학중에서 교수진과
설비를 잘 갖춘 대학에다 정원을 늘려주면 될 것이다.

최근 인가된 의과대학들의 입학정원은 30명 수준으로 그와 같이 소수의
인원을 가르치기 위해서 엄청난 투자를 해야 된다는 것은 국가자원의
낭비라고 생각된다.

그뿐 아니라 병리학 해부학 생화학 생리학 등의 기초분야 교수가 극도로
부족하다고 한다.

병원에서 과장으로 일하고 있는 30대 의사의 말에 의하면 의과대학에서
배운 지식으로는 도저히 환자를 볼 실력이 안된다고 한다.

의예과라는 제도에도 문제가 있다.

의예과에 입학한 학생은 특별한 문제가 없는 한 본과에 진학하게 되므로
별로 공부를 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보다는 차라리 대학에서 화학 생물학 물리학 공학 등을 공부하고
학사학위를 받은 졸업생들이 본과에 입학해서 4년간 공부하도록 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일 것이다.

미국의 의과대학들이 바로 그런 제도를 택하고 있는데, 졸업하면 바로
의학박사(MD)학위를 받는다.

실제로 듀크대학 의대 졸업식에 참석해본 경험이 있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한 후 졸업하는 것을 보았다.

약 2년간을 더하면 의학박사와 학술박사학위(PHD)까지 같이 받을 수도
있으며 그런 사람들은 대개 교수나 연구자가 된다.

현재의 제도하에서는 6년을 공부한 후 학사학위를 받고 인턴과정을
하면서 석사과정을 마치고 레지던트를 하면서 박사과정을 하기 때문에
임상경험도 제대로 못하고 학위논문의 질도 보장할수 없게 된다.

현 제도를 존속하려면 최소한 6년을 마친 후 바로 석사학위를 주고
현재의 의학석사는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박사학위는 임상 의사들에게는 필요없고 전문의자격만 있으면 되는데
사회에서 전문의보다는 의학박사를 선호하기 때문에 애로가 있는 것은 알고
있다.

또한 필자의 주장대로 8년을 마치고 의학박사 학위를 주면 대학의 연구실
운영이 어렵게 된다는 것도 이해할수 있다.

그러나 의과대학의 대학원에서 주는 학위는 의과학박사(Doctor of Medical
Sciences)라고 해서 해부학 병리학 생리학 등의 학위를 주면 될 것이다.

석사라는 학위는 미국 영국 캐나다 호주 일본 중국 한국 등에만 있고 독일
러시아 같은 나라에는 없다.

미국이나 영국에서도 학사학위를 받고 바로 박사과정에 들어갈 수 있으며,
경우에 따라서는 박사과정을 제대로 못마치는 학생에게는 석사학위를 주어서
내보기도 한다.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석-박사 통합과정이 생겨서 그것이 가능하게
되었다.

미국에서 공부한 사람들을 보면 석사학위가 전혀 없거나 석사와 박사를
같은날 받은 경우도 있고, 석사를 받고 1년후에 박사학위를 받은 경우도
있다.

모두 석-박사 통합과정의 개념이 도입되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의사가 아니지만 우리나라의 발전을 위해서 이와같은 제안을
하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8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