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식 부총리겸 재정경제원장관이 이끄는 경제팀이 모처럼만에 백화점식
금융시장종합대책을 발표한 다음날 실물경제쪽에서의 평가는 냉혹하기 짝이
없었다.

금리와 원-달러환율은 급등했고 주식시장은 폭락했다.

일단 자금시장 및 주식투자자들이 내린 정부 대책에 대한 성적표는 "F"
학점인 셈이다.

시장사정을 보여주는 3대 지표가 이같이 일제히 빨간불을 나타낸데에는
무엇보다도 8.26금융시장안정대책이 현 사태의 본질을 외면한 미봉책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지나치게 "원칙"을 고수,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게 별로 없는데다
까다로운 요구조건을 달아 세월이 한참지나야 지원의 혜택을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더군다나 대기업의 연쇄부도 여파를 막는 대책을 만들면서 기업에 대한
유상증자 규제완화 및 증권사의 회사채지급보증 부활 등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는 조치는 취하지 않았다.

당초 예상됐던 기아사태 해결대책도 제시되지 않았다.

제일은행 특융지원 수준 및 증시의 외국인투자한도 확대폭도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정부가 발표한 금융시장 안정대책이 왜 시장에서 효력을 내지못하는지를
정리한다.

<> 제일은행 지원 =재경원은 금융통화운영위원회의 입장을 고려한듯
제일은행에 대한 한국은행 자금지원의 규모와 금리를 공식적으로 명시하지
않았다.

대체로 2조원안팎에 연 8.5%로 지원될 것으로 알려졌을 뿐이다.

물론 이보다 더욱 나쁜 조건으로 특융이 제공될 수 있음은 물론이다.

이같은 지원수준은 당초 3조원에 연 3% 금리를 기대했던 제일은행 및
주식투자자들에게 실망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했다.

적자규모에 비해 실질적인 자금난 개선효과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제일은행의 증자과정에 대한 정부의 참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자금난
해소에 별 도움이 안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채를 발행하려면 국회의 동의를 받아야하는데 민영은행을 사실상
국책은행화한다는 발상은 현정부가 추진중인 공기업민영화추세는 물론
국책은행의 정부출자기관화 흐름에도 역행한다.

국민부담에 기초한 특정은행 지원이 야권으로부터 쉽사리 호응을 얻기도
힘들 것이다.

게다가 국채발행에 성공한다해도 현물출자에 그치기로 한만큼 제일은행이
국채를 팔아 현금재원으로 활용할 수는 없다.

단순히 장부상의 수지개선효과가 있을 뿐이다.

교묘한 회계상의 분식에 불과하다는 평가도 나오고 있다.

<> 종금사 지원 =그간 부도유예협약에 가장 큰 불만을 가져온 종금사를
위한 배려이지만 전제조건이 지나치게 까다롭다.

연 8.5%가량의 자금을 한은에서 1년동안 융자받으려면 자구계획서 제출과
함께 대주주의 경영권포기각서가 수반되어야 한다.

물론 재경원은 부도유예협약대상기업과의 형평성을 고려, 이같이
결정했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지원규모를 해당종금사의 부도유예기업에 대한 여신범위내로
한정하고 있어 소유권 박탈위기를 자초할 종금사가 몇개나 될지 의문이다.

< 최승욱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