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1천만대 시대를 맞은 한국.

그러나 자동차 한국의 고속도로는 연일 만원사례로 "교통"의 동의어를
"고통"으로 바꾸어 놓았다.

골목과 주차장을 꽉 채우고도 모자라는 주차난에도 불구하고 식을 줄
모르는 자동차 구매열기.

경기불황이니 소비위축이니 하지만 차를 갖고 싶어 못견디는 사람은 모두
차를 산다.

톡톡 튀는 미모의 자동차세일즈우먼 이은정(23.여)씨는 아침 7시30분이면
어김없이 현대자동차 충무로지점 영업소에 나타난다.

지난 5월 사내모델로 현대차 제품카탈로그에 실린 이후로는 매일 30여통의
삐삐와 20여통의 휴대폰이 시도 때도 없이 울린다.

이런 연락들이 모두 차를 구입하겠다고 나선 것이라면 얼마나 좋겠는가.

그러나 사회에 발들여 놓은지 6개월도 안되는 초년병에게 그리 쉽게 돈이
벌릴리 없다.

그래도 꾸준히 판매량이 늘고 있고 오고가는 통화속에 잠재수요자가
실수요자로 탈바꿈하고 있다.

이씨는 국악예고와 단국대 음대 국악과를 나온 미모의 정통국악도.

대학때는 여성잡지와 패션잡지 10여종에 단역모델로 출연해 모델료로만
50만원이 넘는 월수입을 올렸다.

지난 3월초 개봉된 이정재 오연수 주연의 영화 "불새"에서 단역으로
1분여간 스크린에 얼굴을 내밀기도 했던 그는 지난 2월 졸업당시 여러모델
에이전시에서 오라는 손짓도 많았지만 이를 뿌리쳤다.

모델계의 구설수가 싫었고 대학원이나 국악단체에 들어가는 것도 도식적
이고 정체감이 들어 싫었다.

많은 사람을 만나는게 좋아 영업직을 선택했다는게 이유같지 않은 이유다.

이런 이력을 가진 이씨에게 만나는 사람마다 한마디씩 던진다.

"좋은 음악실력을 놔두고 왜 이렇게 힘든 일을 해" "요즘 차 한대 팔면서
미인계까지 동원하나 보죠"라며 은근한 관심을 표시한다.

관심이 지나쳐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그에게 술이나 한잔 하자며 전화를
거는 총각고객들도 있다.

그때마다 나갈수 없다고 적당히 거절하는데 고객의 마음이 아주 떠나지
않도록 붙잡아두기도 해야 하는게 적잖은 고충이다.

일과가 끝나는 7시가 넘으면 절대 고객을 만나지 않는 것을 불문율로 정해
놓고 있다.

빼어난 미모의 그가 가장 무서워하는 존재는 매서운 눈초리의 빌딩 수위
아저씨.

수위아저씨들 앞에서는 언제나 고양이앞의 쥐다.

새로운 고객들을 만들려 "빌딩을 탈때"마다 제지당하기 일쑤다.

이럴때마다 이런 직업을 왜 택했는지 모르겠다고 푸념하는 이씨지만 장난기
넘치는 웃음이 압권이다.

아직 사회초년병이어서인지 차파는 일보다 많은 사람들을 접하면서 배우는
재미에 흠뻑 빠져 있는 듯하다.

"눈치파악이 빠르고 무대에 자주 서서 그런지 낯선 사람들과 만나는게
겁나지 않아요. 회사의 이사급 임원을 만나도, 갑부고객을 만나도, 그
배경을 무시한채 편한 마음으로 대하죠. 차도 팔고 그들이 갖고 있는 지혜도
얻고, 세일즈의 매력입니다"

그녀는 자동차를 많이 팔아 판매왕이 되는게 꿈이다.

월수입 7백만원고지를 향해 겁없이 달려들고 있는 신출내기 카 세일즈우먼
이은정씨.

번 돈을 어려운 사람들을 위해 쓰고 싶다며 속깊은 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목표가 중요해도 미인계는 쓰지 않겠다는 그는 현대자동차를
대표하는 사내모델로서 카탈로그에서 풍기는 이미지대로만 영업에 나선다면
신뢰도 쌓이고 차도 많이 팔릴 것 같다고 말한다.

< 정종호 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7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