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한햇동안도 1만9백여개 중소기업이 부도를 냈다.

이들중엔 자신의 잘못이 아니라 남의 잘못으로 부도를 낸 사업자들이
예상외로 많다.

자금난 판매부진등 경영난 때문에 부도를 낸 것이 아니라 연쇄부도를
당한 것이다.

한기윤기협중앙회조사부장은 "지난해 연쇄부도를 당한 중소기업은
동우정밀공업을 비롯 세신유화산업등 2천5여백개 정도에 이른다"고
밝혔다.

왜 이렇게 엄청나게 많은 기업들이 연쇄부도로 쓰러지는가.

"이는 판매대금으로 받아놓은 어음이 부도가 나는 바람에 덩달아 부도를
당하는데 따른 것"이라고 채재억중진공이사장은 분석했다.

장기어음이 휴지조각이 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최근 기협중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부품이나
완제품을생산해 판매한 뒤 받는 대금 가운데 현금은 30.3%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69.7%는 어음을 받았다는 것이다.

그나마 이들은 즉시 현금화할 수 없는 장기어음이 대부분이었다.

현재 하도급거래공정법과 기업간협력법엔 분명히 60일이상의 장기어음은
발행하지 말도록 규정하고 있다.

대기업이나 백화점등에 납품했을 때 60일이내에 대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해놨다.

그럼에도 지난 한햇동안 상거래상 발행어음중 대금회수기간이 60일미만인
것은 전체의 1.4%에 지나지 않았다.

전산업체인 한영시스템의 한재열회장은 "이로 인해 전자 자동차 기계등의
부품을 생산하는중소기업을 비롯 의복류등을 생산 시장에 납품하는 업체들이
장기어음을 손에쥐고 있다가 부도에 휘말리고만다"고 설명했다.

어음의 현금화를 위해 은행에서는 할인을 해준다.

그러나 현재 시중은행에서는 어음발행기간이 1백20일이하에 대해서만
할인혜택을 주고 있다.

그렇지만 실제 기업거래에선 회수기간 1백20일이상 어음이 전체의
70.3%를 차지하고 있다.

제도와 현실이 너무 엄청나게 동떨어져 있다.

따라서장기어음을 받은 기업은 물건을 팔고도 어음을 가진 채 불안에
떨어야하는 실정이다.

중소기업연수업체인 한국경제정책연구원의 김광경원장은 "장기어음발행은
결국중소기업의 자금난을 부채질 할 뿐아니라 연쇄부도의 가장 큰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더욱이 중소기업들은 철강을 비롯한 각종 소재및 원자재를 조달할 때는
현금을 줘야하는 형편이어서 더욱 자금난을 가중시킨다는 것이다.

장기어음발행관행은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거래 뿐아니라 중소기업간
거래에서도 줄곧 말썽을 일으키고 있다.

지난해에도 신아엔지니어링과 삼양정수공업, 양덕기업과 주식회사강남,
삼기양행과 밀란등 40여개 중소기업들이 납품대금거래관계로 심한 분쟁을
일으켰다.

이처럼 기업들의 장기어음발행이 중소기업의 연쇄부도를 일으키게 하고
자금난을 가중시키고 있음에도 이를 규제하기 위한 시책은 너무나 미흡한
형편이다.

하도급거래공정법에 60일이하어음만 발행토록 한 규정은 이미 사문화된지
오래이다.

이로 인한 연쇄부도를 막기위해 정부는 기협중앙회안에 공제기금을 설치,
부도어음에 대해 보상을 해주는 제도를 실시중이나 역부족인 상태다.

한햇동안 국내부도어음액은 12조9천억원 수준인데 비해 공제기금의
부도어음대출은 연간 3백억원을 겨우 넘어서는 정도였다.

어음할인등 공제기금지원총액을 합쳐도 3천억원을 밑돈다.

이것만으로 연쇄부도를 막기엔 너무나 힘겨울 수 밖에 없다.

올들어서야 정부와 중소기업청도 이같은 연쇄부도를 막기 위한 대책이
시급한점을 깨닫고 새로운 사업을 펴기 시작했다.

이 대책의 하나로 내놓은 것이 어음보혐제도.연쇄도산방지를 위해
1백억원의 예산을 배정했다.

그러나 업계에선 어느 누구도 12조원을 넘어서는 부도액을 1백억원의
예산으로 막아내기란 힘들 것으로 보고 있다.

다만 부도위기에 직면한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지원키로 한 특별회생자금
3백억원은 유용하게 쓰여질 것으로 전망한다.

그럼에도 업계는 이러한 소극적인 방법으론 더이상 연쇄부도를
줄일 순 없을 것으로 판단한다.

보다 획기적인 제도개선이 뒤따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장기어음발행을 규제할 수 있는 특별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이영식창신기계사장은 "기술개발과 수출확대에 힘을 쏟아야 할
중소기업사장들이 더이상 자금시장에 뛰어다니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업계는 첫째 60일이상어음을 발행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강력한제재를 취할 수 있는 제도를 새로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둘째로는 납품대금어음에 대해서는 담보없이 무조건 할인해주는등
대책이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세째, 업계 스스로도 공동 캠페인을 벌여 자발적으로 장기어음발행을
자제하는데 앞장서야 할 것이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 개설될 금융개혁위원회에서도 장기어음할인에 대한 개선대책이
주요과제로 거론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치구기자>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