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국부로 추앙되고 있는 손문은 광동성 향산사람이다.

그가 젊었을 때 천진으로 당시 정계의 거물인 이홍장을 찾아갔을
때였다.

구국의 신념을 토로하는 젊은 혁명가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듯하던
이홍장은 이내 졸기 시작해 손문의 이야기가 끝날 무렵에는 깊은 잠에
빠졌다.

그러나 이홍장에게도 그럴만한 이유가 있었다.

그는 후일 손문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고
불평을 털어놓았다.

그는 광동어를 몰랐기 때문이다.

강남 절강성 소흥에서 출생한 노신은 1921년말 "아Q정전"을 내놓자
일약 인민의 영웅으로 부상했다.

그러자 북경대에서 그를 초빙해 "중국소설사"강의를 맡겼다.

첫날은 학생들로 메워졌던 강의실이 그 다음 시간부터는 썰렁해졌다.

그의 심한 소흥사투리를 학생들이 전혀 알아들을 수 없었던 탓이다.

중국이라는 드넓은 영토를 가진 다민족 국가의 특수한 예이기는 하지만
손문과 노신이 유창하게 북경어를 구사할 수 있었다면 중국의 혁명이나
근대화가 훨씬 더 앞당겨졌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보면 언어의 중요성을
실감할 수 있다.

분단된지 반세기를 넘기고 있는 한민족의 언어는 그동안 남.북한
언어정책에 따라 심각하게 이질화된 현상을 보이고 있다.

북한의 문화어라는 해방처녀 (미혼모) 외동옷 (원피스) 동강옷 (투피스)
나리옷 (드레스)을 남한 사람은 무슨 소린지 알아듣지 못한다.

무연하다 (무질서하다) 은을낸다 (효과를 내다) 끌끌하다 (생기 있고
듬직하다) "수걱수걱 (말없이 일하는 형용) 답새기다 (두드려 패거나
족치다)라는 북한인들의 생활용어조차 쉽게 이해할 남한 사람은 없다.

물론 어문규범도 다를 수밖에 없다.

국립국어연구원이 최근 중국 장춘에서 북한의 국어사정위원회, 중국의
조선어사정위원회와 공동 주최로 학술회의를 열어 맞춤법 띄어쓰기
외래어표기법 등에 대한 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우리말 규범의 통일안을 마련해 보려는 회의였다.

특히 이 회의에서는 앞으로 남.북한은 어문규범을 개정한다 하더라도
더 이상 차이가 나지 않도록 한다는데 합의했다고 한다.

언어는 개념의 표현이고 한 민족이 개념의 동일성을 보존하지 못할 때
그 언어의 동일성은 유지되지 못한다.

언젠가는 꼭 이루어질 민족통일을 위해서는 남.북한 언어의 이질화를
막는 것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과제는 없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