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문명은 전기문명이다.

전기가 없으면 고층 빌딩으로 상징되는 도시생활이 불가능하며 최근에
각광받고 있는 멀티미디어를 중심으로 한 정보통신 혁명도 한낱 꿈에
불과해진다.

각종 가전제품을 이용하는 문화생활이 어려워지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이렇게 중요한 전력공급에 비상이 걸렸다.

벌써 몇해째 여름철만 되면 되풀이되는 현상이다.

전력공급 예비율이 바닥권이라는 말이 끊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날씨가 더워 전력수요가 예상보다 크게 늘거나 100만kW급 원전1기의
가동이 중단되는 돌발 사태라도 일어나면 제한송전이 불가피한 상황이
생길수 있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데에는 우선 전력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전력과
통산부의 책임이 적지 않다.

한 예로 통산부는 지난해 말까지도 전력공급 능력이 이달중 완공목표인
9개발전소 224만kW를 합쳐 3,482만kW인데 비해 수요는 지난해보다 9% 늘어난
3,256만kW로 예상돼 전력 예비율을 7%로 유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러던 것이 지난 3월에는 올 여름 최대 전력수요를 3,300만~3,400만kW로
슬그머니 올려 잡았다.

이에 따라 전력예비율은 올 여름에 이상고온현상이 없더라도 3.7%에
불과하게 됐다.

이렇게 엉성한 수요예측으로 어떻게 국가경제의 대동맥인 전력수급에
문제가 없다고 장담해왔는지 한심한 일이다.

물론 전력수요에 큰 영향을 미치는 경기와 날씨를 정확히 예측하기는
어렵다.

또 발전능력의 확충에는 상당한 시일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한 나라의 전력수급 불안을 변덕스러운 날씨 탓으로만 돌려서야
되겠는가.

어쨌든 전력수급 안정대책 마련이 시급해졌다.

그리고 당장은 절약밖에는 뾰족한 수가 없는 실정이다.

지난 8일 박재윤 통산부장관 주재로 열린 전력수급 대책회의에서 마련된
"여름철 전력수급대책"도 여름철, 그리고 오후 2~4시에 절전하는 소비자에게
전기료할인폭을 확대하고 하계휴가-보수조정 예금제도를 시행하기로 하는 등
소비절약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문제는 절전대책의 강도가 너무 약하다는데 있다.

전력수급 안정에는 기본적으로 발전능력 확충이 필요하지만 절감이 못지
않게 중요하다.

그러나 발표된 대책은 그 효과가 의문시된다.

발전소 건설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며 투자재원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전기요금도 올려야 한다.

이는 가뜩이나 어려운 국제수지 균형과 물가안정을 더욱 악화시키기 쉽다.

발전소건설에 따른 오염증가및 지역주민의 반발도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몇해전 OECD보고서도 전 세계적으로 에너지공급에 비해
에너지수요쪽의 효율향상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그런데도 최근 우리는 국민소득 1만달러 달성과 OECD가입추진 때문인지는
몰라도 지나치게 흥청대는 분위기다.

전력수급 안정은 단기적으로는 물론 남북경협의 확대가능성을 고려할때
중장기적으로도 전혀 낙관할수 없는 상황이다.

관계당국의 보다 강도높은 대책마련은 물론 온 국민의 절전의식을 새롭게
다져야 할 때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6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