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우병파동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유럽연합(EU)의 쇠고기산업은 깊은
수렁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광우병파동이 진정되면 3백20억달러규모의 유럽 쇠고기시장이 곧 회복될
것으로 기대됐지만 이번 파동으로 유럽 소비자들의 쇠고기소비가 격감하고
있는 가운데 장기간 침체국면으로 이어질 것으로 우려되고 있다.

영국 정부가 지난달 광우병이 사람에게 발병하는 크로이츠펠트.야콥(CJD)병
과 연관이 있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첫 시사한지 한달여동안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외면으로 유럽 도축업계의 매출은 무려 40%나 급감했다.

전문가들은 유럽의 쇠고기소비가 앞으로 수개월 내지 수년동안 최소한
10~20% 감소세를 지속할 것으로 믿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도 오는 2000년까지 쇠고기소비가 최소 10%정도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예측했다.

쇠고기소비감소는 국제시장에서 대체제인 돼지나 닭의 수요증가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 22일 대표적인 국제가축시장인 시카고상업거래소(CME)에서 소선물
가격은 9년만의 최저치인 1백파운드당 58달러에 거래됐다.

반면 돼지는 56달러에 거래돼 5년만에 최고시세를 보였다.

쇠고기와 돼지고기간의 현격한 생산원가 격차도 쇠고기시장에 암운을
드리우는 요인이다.

소의 사료인 목초가 돼지의 곡물사료에 비해 비싼탓에 유럽에서 kg당
쇠고기 생산비는 2.91ECU(1ECU는 1.2달러)인데 반해 돼지고기의 경우 절반
에도 못미치는 1.41ECU에 불과하다.

제도적인 요인도 쇠고기시장에 불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우루과이라운드 협정에 따라 보조금을 받아 사육된 EU산 소의 수출량은
올해 1백10만t규모에서 오는 2000년께 82만t으로 줄어들 전망이다.

반면 돼지와 닭의 사육농가는 EU자체의 공동농업정책(CAP)에 따라 보조금
수혜가 늘어나 경쟁력이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래저래 쇠고기 시장은 이중삼중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셈이다.

광우병파동은 소를 원료로 하는 다른 산업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EU는 소에서 추출되는 교원질을 원료로 하는 화장품을 수거토록 조치했고
요르단은 영국산 초컬릿을 수거시켰으며 이집트는 영국산 소가죽에 대한
수입금지조치를 내렸다.

이밖에 대만은 영국산 유아용 유제품에 대해 금수조치를 고려중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뾰족한 해결책이 제시되지 못하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영국은 EU의 지원을 받아 대량 소도축에 나설 예정이지만 감염된 소를
정확히 추적하기조차 어렵다는게 영국측의 하소연이다.

프랑스 등 일부 EU 회원국은 자국시장보호를 위해 자국산쇠고기임을 명기
하고 있어 광우병공포가 소비자들에게 어떻게 투영되고 있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소비자들의 신뢰가 회복되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진단이다.

따라서 유럽쇠고기 시장은 상당기간동안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지 않을 수
없을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

< 유재혁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