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형 다국적 제약업체들의 국내시장 직진출 추세에 대응하기 위한
국내 제약업체의 신약개발노력이 시급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국내 제약업체들은 신약개발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것과는 달리 신약개발을 위한 자금력과 인력이 취약하고
개발의지도 별로 갖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국내업체들은 우선 신약연구개발에 투입하는 자금규모면에서 외국업체에
크게뒤지고 있다.

지난 94년 국내 1백대 제약업체의 연구비는 모두 1천3백74억원으로
매출액대비 3.7 5%에 불과했다.

세계 10대 제약회사들이 7조-9조원의 매출액중 10%~15%를 연구비로
쏟아부은 것에 비하면 크게 부족한 액수이다.

연구인력 구조도 비슷한 상황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50인 이상의 대졸 연구인력을 확보한 제약업체는
17개사에 머물고 있다.

연구인력비중은 제약업계 종사자의 5%선인 3천5백여명에 불과하다.

그나마 전문연구인력은 1천3백명이고 이중 석사학위 이상 소지자는
9백40명선이다.

선진제약기업들이 업체별로 최소 2천명 이상의 전문연구인력을 확보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극히미약한 수준이다.

연구인력에 대한 처우 역시 형편없어 신약개발에 대한 개개인의 확고한
신념이 없으면 연구를 이끌어갈 수 없을 지경이다.

실제로 제약업계 연구인력의입사 초년 연봉은 대기업체의 75%~80%선인
1천4백만원선에 불과하다.

근무연한이 늘어날수록 대기업 사무직 종사자들과의 임금격차는 더욱
벌어진다.

대기업계열 제약업체를 제외한 국내 제약업체 신약개발의지가 부족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국내 제약업체들은 신물질 개발은 물론이거니와 임상실험에 드는 막대한
비용을 감당할 능력도 갖추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될 만한 임상실험체계와 기관도 없다.

이때문에 세계시장을 노리고 개발한신약에 대한 임상실험은 외국업체나
기관에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 91년초 LG화학이 4년간 50억원을 투입해 개발한 제4세대
세파계 항생제는 영국의 글락소사에 일시불로 1백20억원, 경상기술료로
순매출액의 7%를 지급받는 조건으로 수출됐다.

만약 우리기술로 임상실험까지완료해 시판했더라면 적어도 연간
4천억원규모의 시장을 창출할 수 있었던 신약이었다는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동안 화학구조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신약이 개발된 적이 없었던데다
임상실험에 대한 확고한 지침 역시 마련돼 있지 않아 신약을 개발했더라도
기술료만 받고 외국업체에 넘겨줌으로써 부가가치를 높이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대다수 제약업체 경영진 또한 신약개발의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있거나 회의적인 경향을 보이고 있는 형편이다.

의약품이 과잉공급되는 상황에서 경영진들은 신약개발이란 불확실한
계획에 자금과 인력을 집중하기 보다는당장의 영업실적을 호전시키기
위해 외국제약기술을 베끼는 임기응변식의 경영에만 골몰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신약개발에 성공한다는 것은 누구도 확신을 갖고 말할수 있는것은
아니다.

이때문에 신약개발은 확률이 불확실한 도박에 비유되고 있다.

성공하면 돈방석에 앉지만 실패하면 끝장이다.

과학기술처에 따르면 새로 발견했거나 합성에 성공한 신물질이 의약품으로
상용화될 확률은 1천분의1로 극히 희박한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일부 외국전문가들은 신물질 5천개를 개발하면 이중 1건만이 상업화에
성공한다는 등 더욱 비관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신약개발을 위해 들여야하는 비용 또한 소규모 업체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늘어나고 있는 실정이다.

외국의 경우 하나의 신약을 개발하는데 드는 비용이 80년대만 하더라도
1억달러 미만이었지만 90년대에 접어들면서 2억달러를 웃돌았고 지난해에는
4억달러선에 육박하고 있다.

외국업체들이 중도포기한 신물질 개발에 낭비한 것까지 감안하면
한품목의 신약개발에 쓰인 돈은 15억달러가 넘는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나 신약개발은 무한경쟁상황에서 살아남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꼽히고있다.

신약개발노력 없이 완제품 수입판매및 기술도입에만 의존한다면
기술종속고리에서 벗어나 자립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국내 의약품시장을 외국업체들에 모두 내주고 단지 판매대리점 수준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것도 이같은 맥락 때문이다.

따라서 신약개발을 위한 업계의 노력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음성적이고 이중적인 유통체계에 따른 비생산적 출혈경쟁에서 탈피, 보다
많은 몫을 신약개발에 투입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특히 신약개발에 따른 위험부담을 최소화할수 있게끔 보다 세밀한
연구관리능력제고와 함께 틈새시장을 파고들수 있는 아이디어개발에도
힘써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이들은 또 신약개발에 대한 정부의 보다 과감한 지원확대는 물론
국가차원의 임상실험체계 정비도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 정종호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