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긍찬 < 외교안보연 교수 >

21세기 국제정치 경제의 다극화시대를 맞아 향후 세계경제성장을 주도해
나갈 실질적 3대축으로서 북미 유럽 그리고 동아시아지역을 꼽을 수 있다.

중장기적으로 이들 3대지역간 상호보완적이며 안정적인 세력균형의 도모는
21세기의 새로운 국제질서 창출과 유지에 핵심적 변수가 될 전망이다.

그러나 현재까지 유럽-북미,북미-동아시아와는 달리 유럽-동아시아지역간
에는 양대지역을 연결하는 아무런 중추적 연계망도 존재하고 있지 않다.

유럽과 북미지역은 인종적 문화적 동질성을 바탕으로 역사적으로 뿌리깊고
다양한 정치 경제적 연계망을 갖고 있다.

북대서양국가들의 정치안보협력을 위한 기존의 NATO라든지 유럽의 EU와
북미의 NAFTA를 경제적으로 통합하려는 대서양 자유무역지대(TAFTA)구상
등이 바로 그러한 것들이다.

또 북미와 동아시아지역간에는 무역과 투자의 자유화를 촉진하기 위한
APEC와 아.태지역국가들간 다자안보논의체로서 ARF가 양대지역을 연결하는
태평양 연계고리로서 작동하고 있다.

따라서 어떠한 형태로든 동아시아와 유럽지역을 연결하는 또다른 연계망을
구축해야할 필요성은 어쩌면 당연히 제기될수 있는 상황이라 하겠다.

아시아-유럽 정상회의(Asia-Europe Meeting:ASEM)는 바로 이러한 양대
지역간 부재한 연결고리를 새롭게 만들어 나가려는 시도이다.

EU 15개회원국들과 동아시아 10개국가들의 수뇌들이 역사상 처음으로 한
자리에 모여 양대 지역을 대표하는 정상회의가 지난 1일부터 이틀간 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개최됐다.

애초에 ASEM은 동남아 ASEAN국가들에 의해 제기되었다.

싱가포르의 이광요 전총리가 1994년 세계경제포럼에서 처음으로 유럽과
동아시아국가들간 정상회담의 필요성을 제기한 이후, 동년 10월 싱가포르의
고촉통 현총리가 당시 유럽 EU의장국인 프랑스를 방문하면서 이를 공식제의
하고 발라뒤르 총리가 긍정적 반응을 보임으로써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어
성사된 것이다.

이와같이 초기 추진과정에서 ASEAN은 ASEM의 창설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바 있다.

ASEAN은 유럽과 동아시아와의 관계강화를 통하여 EU로부터 투자유치및
기술이전을 도모하고 EU시장에 대한 접근을 확대해 나감은 물론, 동아시아의
지정학적 조건과 경제적 활력을 바탕으로 북미지역과의 기존관계유지와
유럽지역과의 새로운 관계강화를 통하여 지속적 경제성장과 이에 필요한
안정적 외부환경을 창출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ASEM을 추진한 것이다.

그러나 ASEAN은 그들 7개국만으로는 부족한 대EU협상력을 강화하기 위해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국가들의 ASEM참여를 유도하게 되었으며, 한국
일본 중국 등 동북아국가들 역시도 대EU진출확대를 위해 이에 적극 동참케
된 것이다.

한편 유럽의 EU국가들도 급속한 경제성장을 이룩하고 있는 동아시아의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하고, 만성적인 저성장과 구조화된 실업 등 유럽경제가
안고 있는 문제해결을 위해 아시아와의 관계강화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다.

또한 유럽국가들은 동아시아-북미지역관계는 APEC의 진전을 통해 가일층
강화되고 있는 반면, 그간 EU와 APEC와의 관계설정 노력이 실효를 거두지
못함에 따라 아시아지역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을 견제할 수 있는 유럽-
동아시아지역간 협의체 구성의 필요성을 새삼 인식하게 되었다.

따라서 EU는 ASEM을 통해 동아시아국가에 대한 다각적인 정치 경제적
접근을 강화해 나가려하고 있다.

유럽은 동아시아에 대해 무역및 투자확대등 경제분야 뿐만아니라 그들
서구사회가 추구하고 있는 인권 자유 법의 지배등 기본가치및 미국 문화와
차별되는 유럽문화의 대아시아지역 확산을 통해 유럽에 대한 아시아의
인식을 제고할 필요성도 강하게 느끼고 있다.

이번 제1차 ASEM회의에서는 양지역의 무역및 투자확대문제, 기술이전,
민간기업차원의 협력증진, 그리고 범세계적 차원에서의 다자무역질서의
정착과 개방적 지역주의 강화등 경제협력분야에 대한 논의가 폭넓게
이루어졌다.

그러나 ASEM에서는 이와같은 경제분야 뿐만아니라 국제사회에 있어서 유엔
의 역할강화 군비통제 비핵확산등 정치안보분야의 공동관심사항도 논의
됐으며 인적자원개발, 각종문화협력및 환경보존, 마약퇴치 테러방지등
광범위한 사회 문화적 이슈들도 함께 검토되었다.

무엇보다도 ASEM개최의 가장 큰 의미는 탈냉전시대에 있어서 세계경제의
3극화(북미-유럽-동아시아)추세가 보다 가시화되었다는 점이며 이들 3극간의
새로운 관계설정과 균형이 모색되는 계기가 되고 있다는 점이다.

또 이번 ASEM개최로 이들 3대지역간 경제협력이 가속화됨으로써 범세계적
지역주의화 추세가 세계경제를 단편화시킬 것이라는 기존의 우려와는 달리
오히려 다자주의적 국제무역질서를 보완할수 있는 방향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도 주목된다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4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