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이지 마켓(미친 시장)"

한국쉘석유의 안드레아스 파블릭상무가 최근 한국의 윤활유 시장 동향을
묻는 기자들의 질문에 주저없이 내뱉은 말이다.

각국의 윤활유 시장을 두루 경험한 외국인 임원이 왜 유독 국내 윤활유
시장에 대해서 "미친"이란 수식어를 사용했을까.

국내 윤활유 시장의 규모는 대략 연간 5천억원.생산회사만도 1백20개가
넘는다.

이중 영세한 곳을 제외하고 "회사"라고 할 수 있는 곳만 따져도 70여개가
넘는다.

그야말로 춘추전국의 시장경쟁을 방불케한다.

그러나 이 시장의 절반 정도를 유공(21%) 호남정유(19%) 쌍용정유(8%)가
차지하고 있다. (한국윤활유 공업협회집계).

같은 정유회사인 한화에너지는 시장점유율이 2.5%로 아직 미약하고
현대정유는 이 시장 신규진입을 검토중이다.

결국 이들 "3대 메이저"가 국내 윤활유 시장을 과점하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셰어경쟁으로 덤핑이 난무하고 있다는 것.

윤활유의 일종인 엔진오일의 경우 정상가격보다 40% 이상 할인된
덤핑가격이 "정상"가격으로 여겨질 정도다.

한마디로 원가나 수익개념이 없다는 식이다.

한국쉘석유같은 외국업체나 중소업체의 경우 덤핑경쟁을 하자니 수익성이
낮아지고 덤핑을 하지 않자니 시장에서 완전히 쫓겨날 형국이다.

브랜드 전략이나 상품전략이 먹혀들어갈 여지가 없는 시장인 셈이다.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것은 오로지 가격이기 때문이다.

"미친"이란 수식어가 나오게 된 배경에는 이같이 "피 튀기는"가격경쟁이
있다.

물론 메이저들도 할말은 있다.

최종소비자(운전자)들 대부분은 브랜드로 상품을 선택하기보다는 카센터의
권유를 받아 제품을 구매한다는 것.

결국 제품차별화보다는 카센터에 많은 이윤을 보장해주는 상품이 인기를
끌게 마련이다.

메이저들은 윤활유 판매로 손실을 입더라도 다른 부분에서 보전할 수
있어 별문제가 되지 않느다는 판단이다.

국내 윤활유시장에서의 극단적인 가격경쟁은 당분간 사라지기 힘들것
같다.

<양홍모기자>

(한국경제신문 1995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