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공 비자금 조성및 관리과정에서 나타난 돈세탁 수법이 정보사부지
사건이나 가짜 양도성 예금증서(CD)사건,동화은행장 비자금 사건등에
필적할 만큼 복잡하고 치밀해 수사팀이 자금추적에 곤욕을 치르고
있다.

때문에 이 사건 수사는 계좌추적 작업에만 1개월가까운 시간이 소요
될 것으로 보여 수사의 장기화가 불가피할 전망이다.

검찰이 현재 자금 추적작업을 벌이고 있는 단계는 신한은행에 예치된
4백85억원의 차명계좌가 이 은행에 입금되기 직전 10여개 시중은행을
통해 수차례 세탁된 부분.

검찰 관계자는 "문제의 돈이 5~10억원씩 수표로 입금됐으며 이 수표들
의 발행처를 조사한 결과 거의 모든 시중은행의 각 지점에서 발행된 것으
로 드러났다"면서 "또 이들 시중은행에서도 수천만원에서 1억원 단위로
출.입금 돼있는등 역시 수차례 돈세탁이 이뤄진 것으로 보인다"며 수사
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검찰은 수사초기만 해도 무소불위의 권능을 지닌 청와대에서 굳이 돈
세탁을 할필요가 있었겠는가 하는 판단에 따라 계좌만 발견되면 비자금
의 실체와 조성경위 파악에 별반 힘이 들지 않을 것으로 생각했던 것이
사실.

그러나 상상외로 치밀한 세탁과정을 거친 사실을 확인한 검찰은 "검은
돈의 생리는 지위고하를 가리지 않는 것 같다"며 혀를 내둘렀다.

한 검찰 관계자는 "신한은행 입금 시점이 92년11월께는 이미 권력 누
수기에 접어든 시점이어서 돈세탁의 필요성을 절감했을 가능성이 크다"
고 말했다.

특히 청와대가 돈세탁을 할 마음만 먹는다면 돈세탁의 귀재로 불리는
이원조 전의원이냐 이용만 전재무장관이 참여했을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동화은행장 사건과 같은 수십차례의 치밀하고 복잡한 돈세탁이 가
능했을 것이란 얘기다.

또한 이같은 돈세탁에는 금융계의 협조가 무엇보다 필수적.

한 검찰 관계자는 "청와대에서 자체적으로 이 돈을 세탁했다기 보다 금
융계에서 알아서 세탁을 해 줬을 가능성이 높다"면서 "제도금융권의 돈
세탁을 거쳐 사채시장에서 다시한번 세탁됐을 경우 자금의 흐름을 역추
적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돈세탁 수법 가운데 "백미"는 철저한 자금세탁을 거친 수표를 소위 자
금추적의 "블랙홀"이라 불리는 사채시장에서 할인해 버리는 수법.

검은 돈만을 노리는 사채꾼들이 만기가 안된 어음 소유자의 현금 융통
을 위해 생긴 할인제도를 악용,현금과 다름없는 수표도 할인해 주고는
소위 "와리깡"을 챙긴 뒤 잠적해 버려 수사팀은 사채시장으로 돈이 들어
간 것으로 확인되면 추적을 포기할수 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6공 비자금 또한 이러한 사채시장의 돈세탁 과정을 거쳤다면 검찰의
자금 역추적은 거의 불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사건 수사에서 검찰의 계좌 추적을 무엇보다 힘들게 하는 것은
청와대에서 이 자금을 관리하면서 이뤄진 돈세탁보다 그 이전에
이 돈들이 청와대에 들어가지전까지 기업들이 자체적으로 행한 세탁일
것으로 수사진은 추정하고 있다.

5공 비리 사건이후 각 기업들이 청와대에 갖다주는 돈에 대해 자체
세탁과정을 거치는 것이 일종의 "예의"처럼 돼 있다는 것이 검찰관계자들의
설명이다.

때문에 이 사건 수사진은 2중의 돈세탁에 대해 자금추적을 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

항간에서는 이같은 계좌추적의 어려움으로 인해 지난 94년 2월부터
2개월여간 진행된 6공 비자금 내사가 벽에 부딪혀 도중에 중단됐다는
소문도 들린다.

< 윤성민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