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미공단의 2단지 북쪽 끝에 자리한 LG마이크론을 들어서면 미래를 향한
힘찬 활기를 느낄수 있다.

회사의 정문에서부터 새 공장 건설과 바쁜 생산현장이 어우러져 이곳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첨단산업의 현장임을 실감나게 한다.

이회사는 영상브라운관 핵심부품인 섀도마스크를 생산하는 우리나라
유일의 업체로 구미공단에서 가장 노사관계가 안정돼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사는 지난 83년 설립이후 7년만인 90년 2백66억원의 매출을 올린이후
연평균 26%의 성장을 지속해왔다.

올해 매출목표는 8백15억원.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회사창립이래 최고의
월매출실적을 기록했다.

장기은행의 장은기술대상수상과 환경부의 환경관리모범업체 선정등 경사가
잇따르고 있다.

이같은 고속 성장은 원만한 노사 관계가 중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고 있다.

LG마이크론 노조는 87년 민주화의 바람이 거세지면서 태동했다.

당시 경영진은 노조의 설립을 반대하거나 와해를 기도하기보다는 처음부터
경영파트너로 인식하고 지원하는 방법을 선택했다.

노조원들의 생각도 합리적이었다.

그러나 90년 들어서면서 노조에 대한 어용성 시비가 일고 한때 강성노조가
등장해 특근반대와 휴일엄수등을 주장하며 분규직전까지 가기도 했다.

그러나 조합원들은 회사의 특성상 라인을 한번 세우면 3억원의 손실이
발생한다며 파업에 반대하고 나서 강성집행부가 불신임당하는 일이 발생
했다.

조합원들이 노조의 활동은 합리적이어야 한다는 원칙을 정해준 셈이다.

그 이후 이회사 노사관계는 안정의 뿌리를 내리게 되었다.

회사측은 노사가 아닌 노경관계임을 강조했다.

노경협의회를 통해 경영환경을 노조에 적극 설명하고 간담회 워크숍
사내홍보지를 통해 조합원들과의 투명한 관계 수립에 나섰다.

또 "스피커업폰제도"를 통해 근로자와 고객들이 사장실에 설치된 직통전화
로 제안이나 건의, 고충사항을 직접 전달할 수 있게 만들었다.

불만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 매주 월요일에 노경실무회의를 열어 현안을
모두 공개적으로 협의하고 있다.

복리후생제도도 강화했다.

그룹사 제품을 싸게 구입할 수 있도록 지원했고 종합검진의 범위도 가족
까지 확대했다.

결혼기념일과 생일에 축하선물을 보내고 내년부터는 중학교입학 자녀에게
PC를 선물하는 계획도 수립했다.

노조도 지난해 임단협을 마무리하면서 "제역할 다하기 운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노경공동실천 결의문도 채택했다.

올해에는 혁신적인 기업문화창출을 위해 노조간부가 앞장서기로 했다.

이제는 노조가 품질과 납기에 책임을 다한다는 자세로 생산 현장에서
대의원을 중심으로 불량품 추방에 나서고 있다.

이회사는 임단협시 머리에 빨간띠를 두르는 전통적인 쟁의 방식도 따르지
않고 있다.

단순한 형식에 불과할 뿐 아니라 낭비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러한 상호이해와 원만한 노사관계 정립에 따라 임단협은 보통 10일을
크게 넘기지 않는다.

회사측은 노조의 요구를 대부분 수용해 상호간의 불만이 거의 없다는
것이 노승표위원장의 설명이다.

노위원장은 "앞으로는 노동조합이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기업이 더 많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특히 "가족적인 경영에서 세계화로 나가는 시점에서 관리자들이
오히려 변하지 않고 있는 점도 있다"고 지적하고, "노조간부들이 직접
고객사를 방문해 제품을 알리는 홍보활동을 하고 고객회사들의 의견을
수렴해 생산현장에 알려줄 계획"이라고 밝힌다.

조희재 사장은 "이념을 둘러싼 대립이나 투쟁을 위한 투쟁, 간부사원의
권위의식등이 노경간에 가장 경계해야 될 사항"이라고 지적한다.

특히 21세기 국제경쟁력 강화를 위해서는 그런 일로 낭비할 시간과 정력이
없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조사장은 "근로자들이 개인적인 비전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하고 회사의
비전과 개인의 비전에 가급적 많은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이회사는 이러한 노사화합을 바탕으로 기존제품보다 기술력과 부가가치가
4배이상 높은 신제품 생산을 위한 제3공장 건설등을 통해 오는 2000년까지
매출을 2천억원으로 늘여 세계3대 메이커로 도약한다는 야심찬 계획을
추진해 나가고 있다.

< 구미=신경원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10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