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9월 FRN(변동금리부사채)을 처음 도입하면서 정책당국은 "선진금융
기법의 도입"이라는 취지를 내걸었다.

개방화 국제화되는 금융환경의 변화에 발맞춘다는 뜻도 있다고 했다.

그런 FRN이 도입된지 채 6개월이 지나지 않아 사장위기에 처하게
됐다.

기준금리인 CD금리가 고공비행을 하는 바람에 1,2월에는 한건의 발행
신청도 없더니 급기야 삼성전자가 국내 최초로 발행한 FRN을 상환
해주겠다고 나선 것. 삼성전자 관계자는 "운전자금에 여유가 있어 그
폭을 축소하고자 하는 방침에 따른 것"이라고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를위해 삼성전자는 최근 증권사를 협상창구로 채권자인 은행 투신등에
매각을 요청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업계의 시각은 그리 곱지 않다.

발행조건상 5년이 지나야 발행사의 조기상환 옵션행사가 가능한데
발행사인 삼성전자가 우월적인 지위를 이용,강제매입하려 들고있다고
주장한다.

이를테면 계약위반이라는 지적이다.

회사측은 유통시장을 통해 매입하겠다고 밝히고 있지만 과거의 경험상
정상적이고도 공정한 매수라고 보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채권전문가들은 발행당시에도 은행등 기관들은 삼성과의 거래관계때문에
울며겨자먹기로 떠안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도체 호황으로 돈이 많아 조기상환한다는게 주된 이유지만 그 배경
에는 요즈음과 같은 금리구조하에서는 조기상환하는 것이 발행사에는
유리하다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설명이다.

채권전문가들은 이같은 이례적인 중도상환으로 시장의 안정성을
해치지나 않을까 우려한다.

FRN을 발행한 여타기업들이 가뜩이나 이자지급부담을 느끼는 터에
선례가 만들어질 경우 유사한 상황에 처해있는 기업들이 이번 경우를
들먹이며 동일한 요구를 해올 수 있다는 우려다.

우리나라와 같이 "잘되면 내 탓이고 잘못되면 네탓"이라는 기업문화가
아직도 살아있는 상황에서 FRN은 차라리 모험이었다.

이런 척박한 토양에서 FRN을 출범시킨 마당에 그 첫 사례가 비정상적인
선례로 남는다면 우리나라 금융시장의 장래를 위해 바람직하지 않다는
지적이 많다.

< 이성태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5년 3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