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석유화학과 삼성종합화학은 요즘 신규투자문제로 또 한차례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먼저 삼성측이 SM(스티렌모노머)을 증설하겠다고 치고 나왔다. 재계의
영원한 맞수 현대가 이를 가만히 보고만 있을리 만무했다.

원료(벤젠)조달면에서 삼성보다 유리한 자기들에게도 동등한 기회(증설)를
달라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 7만t규모로 남아돌고 있는 벤젠을 자체소화하겠다는 명분을 내걸고
그동안 물밑으로만 준비해온 SM증설(20만t)프로젝트를 공론화하고 나선
것이다.

현대와 삼성이 경기가 바닥에서 탈출하기가 무섭게 또 한차례 신규투자경쟁
을 벌이고 있다.

지난 4년여동안 안팎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납짝 엎드려 지냈던 것과는
판이한 모습이다.

러시아기술을 도입,정밀화학분야진출을 서두르고 있다. 동남아 황금시장을
겨냥, 대만과 합작으로 SM증설(20만t)도 추진중이다.

현대도 휘발유옥탄가향상제인 MTBE에 신규참여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
SM 증설도 추진하고 있다.

상공자원부의 기술도입신고서반려로 뜻을 이루지못한 카프로락탐사업도
재추진할 움직임이다.

삼성과 현대가 후발로 뛰어든 석유화학부문에서 까지 "정상"을 정복
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하고 있는 것이다.

올들어 적자가 눈에 띠게 줄어드는 등 외형상으로 현대와 삼성이 몰라
보게 달라지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내년에는 적자늪에서 탈출,4백억-5백억원의 흑자를 낼것이라는 기대에
부풀어있다.

96년쯤에 가서야 손익균형을 이루려던 당초 목표를 1년 앞당길 수 있게
된것이다.

흑자로 자금회전이 원활해질경우 누적채무를 갚는것은 시간문제라는게
이들 업체의 시각이다.

그러나 신규참여업체의 이같은 움직임을 보는 기존업체들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다.

이들은 투자경쟁을 하기에는 아직 시기상조라고 지적한다. 공급과잉
몸살을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엊그제의 어려웠던 기억들을 신규참여업체들이 그렇게 쉽게 잊어버릴 수
없다고 아우성을 쳐댄다.

삼성과 현대가 더이상 평지풍파를 일으키지 않도록 견제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우려가 비단 외부에서만 제기되는것은 아니다. 자체에서 조차
투자의 타당성 여부를 둘러싼 의견들이 분분하다. 지난날의 상처를 다시
한번 도지게해서는 안된다는것이다.

삼성은 본격가동에 들어간 첫해인 92년에 매출3천9백50억원에 9백60억원의
적자를 냈었다. 현대도 3천4백35억원의 매출에 적자가 6백97억원에 이르
렀었다.

지난해에도 삼성과 현대는 각각 9백43억원,5백94억원의 적자를 냈다.

이들의 누적적자는 공장가동후 지난해말까지 2년6개월여만에 3천2백86억원
으로 불어났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않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누적적자를 그대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삼성과 현대가 증자를 거듭,자본금을 각각 4천6백억원,4천3백52억원으로
늘렸다. 그룹계열사 가운데 공히 최대규모이다. 증자라는 긴급수혈로 자금
부담을 줄여야 했던 것이다.

1조3천억원이라는 대규모투자에 따른 감가상각이 부담스러웠다고
치더라도 재계선두주자로서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을 실적이었다.

현대와 삼성은 국내유화산업에 커다란 소용돌이를 몰고왔던 것은 분명
하다.

특유의 저력을 바탕으로 시장참여와 동시에 기존 판도를 뿌리채 흔들어
버렸다.

PE(폴리에틸렌)PP(폴리프로필렌)등 폴리올레핀내수시장에서 한양화학
대한유화 호남석유화학등과 선두다툼을 벌였다.

수출시장에서도 발군의 실력을 발휘했다. 전체 폴리올레핀 생산량의 60%
선을 해외시장에 퍼냈다. 종전의 전형적인 내수산업이라는 개념을 털어
냈다.

한국이 일본을 누르고 동남아시장의 주도권을 거머쥐게 하는데도 견인차
역할을 해냈다.

석유화학업계는 이제 대산읍 독곶리의 야산 황금산을 경계로 현대와
삼성이 3조원을 들여 일궈낸 제3의 석유화학단지가 몰고온 충격파에서는
벗어나고 있다.

대규모 투자를 내세운 신규참여가 일으킨 시행착오를 더이상 반복하지
않으면서 국제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길을 찾아 나설때인것 같다.

< 김경식기자 >

(한국경제신문 1994년 9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