않았음을 발견하게 된다.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의 엠페로클레스도
그들중의 한사람이다. 철학자 시인 과학자 의사 변호사 사제 정치가라는
많은 타이틀을 가진 다재다능한 인물이다.
남다르게 빼어난 여느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그의 생애는 후세 문인들의
작품 소재가 될 정도로 극적이었다. 문자 그대로 기인의 삶이었다.
독일의 서정시인 프리르리히 횔러클린의 희곡 "엠페로클레스의 죽음"은
전설로 내려오던 그의 비극적 삶을 극화한다.
세월이 흐름속에서 떠말려 가면서 온갖 세속적 제약에 묶여 영위되는
일상의 삶에 괴로와하고 회의를 느낀 나머지 신과 같은 자유로운 삶을
얻고자 에트나화산의 분화구에 몸을 던진 엠페로클레스의 전설에서 극의
줄거리는 이어진다.
횔러클린은 그에서 한걸음 나아가 숭화된 죽음의 세계를 추구한다. 신과
자연으로부터 이반되어버린 사람들을 그 근원으로 되돌려놓으려 노력하던
예페로클레스는 그 열의가 지나쳐 신과 자연에게 잘못을 저지르게 된다.
그는 그죄를 보상하고자 화산분화구에 자신의 몸을 던져 어지렵혀진 질서
를 회복하고 신-자연과의 합일을 회복한다.
횔더를린의 이러한 작품이 나오게 된데에는 엠페도클레스의 사상적
뒷받침이 있있음은 물론이다. 신령의 윤회를 주창한 "정화", 우주의 구조
를 논한 "자연에 대하여"라는 시 형식으로된 두편의 저술이 그 바탕이다.
만물은 흙 공기 물 불로 구성되어 있고 이 네가지 원소가 사랑과 투쟁의
힘에 의해 결합 분리되면서 생멸한다고 보는 것이 그의 자연관이다.
이러한 원소론에서 그의 윤회사상도 싹튼 것이다. 그의 역사관 또한
마찬가지다. 사랑이 지배하는 시기, 투쟁의 힘이 중대하든 시기, 투쟁이
지배하는 시기,사랑의 힘이 중대하든 시기가 끊임없이 반복된다는 것이다.
엠페도클레스의 생애는 이처럼 상아탑적 사유의 세계에만 머물렀던 것은
아니다. 그리스이 민주정치를 지키려는 투쟁을 벌이다가 추방을 당하는
절망을 겪기도 했다. 어쩌면 그가 추구한 신-자연과의 합일(죽음)은
민주정치의 이상이 좌절된 상황의 소산일수도 있다.
그의 저술은 갈라톤의 "대화"등에 단편적으로 수록되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최근 그의 저술원본 일부가 프랑스의 스트라스부르대학
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 내용이 어떤 것인지는 알려지지 않고 있으나 기록의 불후성을 다시금
확인해 주는 징표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