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맨해턴섬 남단의 월스트리트. "한탕주의"의 대명사 정크본드를
창출한 희대의 금융천재 마이클 밀큰과 그를 앞세워 월가를 주름잡았던
드렉설 버넘 램버트투김사는 더이상 찾아볼수 없었다.

80년대 후반 "고위험고수익"을 주무기로 한 정크본드를 마구 유통시켜
멀쩡한 기업을 잡아먹는 투기형 M&A(Merger&Acquisition=기업합병및
매수)를 유행시켰던 드렉설사가 미경제의 투기적 거품이 꺼지는 것과
함께 파산절차를 밟아 최근 완전 정리됐기 때문이다.

분 피킨즈,이반 보에스키등 80년대 후반 월가를 주름잡았던 금융천재들도
더이상 찾아보기 어렵기는 마찬가지. 미기업들의 경쟁력이 갈수록 약화되는
와중에 투기적 M&A만 기승을 부리다 보니 기업들도 망가지고 급기야는 M&A
자체도 시들해지는 과정을 밟게 된것.

이런 을씨년스런 모습을 뒤로 한채 월가가 최근 빠른 템포로 활기를
되찾고있다. M&A도 다시 고개를 들고있다. 파괴적인 것으로 비쳐졌던
M&A가 오히려 미국기업들의 산업조직을 효율화하고 경쟁력을 끌어올리는
유효한 방편으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는 얘기다.

"미국기업을 망치고,따라서 미국경제를 말아먹는 자해행위"라는 비난을
들었던 M&A가 전혀 딴 모습으로 미국경제를 견인하고있다(리처드 마호니
JP모건사 선임이코노미스트)는 지적이 서슴없이 나올 정도다. 작년 하반기
이후 총거래금액 1백26억달러에 달하는 AT&T의 무선통신회사 맥코사 흡수
합병을 비롯,케이블네트워크업체 QVC사의 파라마운트영화사 매입등 굵직한
M&A가 꼬리를 물면서 월가의 판도에도 일대 변화가 일고있다. 밀큰등 "금융
천재"들이 차지했던 자리를 봅 앨런AT&T회장,레이먼드 스미스 벨어틀랜틱사
회장,크레이그 맥코사회장등 비금융계의 기업경영자들이 넘겨받고 있는 것.
이런 현상은 LBO(Leveraged Buy-out=매입대상기업의 자산을 담보로 자금을
차입,그 기업을 매입하는 투기적 금융기법) MBO(매수대상기업의 경영자가
연루된 LBO)등을 동원한 "적대적 매수공세(Hostile Bid)"가 판을 쳤던 M&A
무대가 기업들이 서로의 필요에 의해 합치는 "연애결혼(Friendly Merger)"
방식으로 물줄기를 틀고있는 것과도 무관하지않다.

이런 방식의 M&A에는 굳이 현란한 금융기법이 동원될 필요가 없고,
그러다보니 일선기업의 최고경영자들이 M&A무대의 직접적인 스폿라이트를
받게된 셈이다.

메릴린치사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내에서 이루어진 M&A는 모두
2천6백64건 1천7백64억달러어치로 전년(2천5백50건 9백49억달러)보다
금액기준으로 무려 86%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나고있다. 이같은 거래규모는
지난 89년이후 4년만의 최대수준.

"불과 3~4년전까지만 해도 미국기업들에 M&A는 공포의 이름이었다. 아무
탈도 없었던 기업들이 애꿎게 M&A의 덫에 걸려 나가떨어지는 풍경이 비일
비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기업인들이 적극 나서서 M&A를 꾸미기에 바쁘다" 월 스트리트 저널지의
랜덜 스미스기자는 "이같은 추세는 특히 정보통신 생명공학등 첨단분야
기업들 사이에 두드러지고 있다"며 "어느새 M&A는 기업들간 전략적 제휴
(Strategic Alliances)의 연장으로 받아들여질만큼 친숙한 존재로 다가서고
있다"고 말한다.

실제로 최근 단행된 주요 M&A 사례를 들여다보면 "달라진" 모습이 확연히
드러난다. 종합통신회사인 AT&T가 맥코사를 매입,합병한 경우는 월가
금융기관들의 직접적인 개입 없이 기업당사자간의 전략적 필요가 맞아
떨어져 이뤄졌다. 결혼으로 따지면 "중매쟁이"를 거치지않고 합궁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21세기를 주도할 신기술로 각광받고있는 멀티미디어
기술 고도화에 사활을 걸고있는 AT&T가 종합통신업체의 "후광"을 절실히
원하고 있던 맥코사와 자연스레 "궁합"을 맞춘 것. 우리돈으로 10조원에
가까운 거대한 돈이 오고간 이 M&A상담이 성사되기까지의 어느 과정에서도
80년대와 같은 뒷공론이 없었다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AT&T는 이에앞서 작년초 컴퓨터회사인 NCR사를 75억달러에 흡수, 미국
기업계에 "관련다각화를 겨냥한 M&A"라는 새로운 물꼬를 터놓은 장본인.
최근 합작조건을 놓고 마지막 절충과정에서 진통을 겪고는 있지만 전신회사
벨 어틀랜틱사와 유선TV방송회사 TCI간의 3백20억달러짜리 초대형 M&A 역시
"정보슈퍼하이웨이" 참여를 위해 양측이 필요로 하는 사업을 서로 주고
받으려는 전략적 판단에 따라 추진되고있는 케이스다.

이밖에 최근 마무리상담이 진행되고있는 제약업체 머크사와 의약도매업체
메드코사간의 60억달러짜리 합병건,콜럼비아 헬스케어사가 55억달러를 들여
HCA병원그룹을 사들이려는 프로젝트등이 모두 해당기업간 전략적 제휴의
일환으로 "기업결합"이 추진되고있는 사례들이다.

이들 M&A가 보여주는 또한가지 두드러진 특징은 거래대금이 현금이 아니라
보유주식을 주고받는 방식으로 결제된다는 것이다. 80년대의 M&A붐이 정크
본드등 투기적인 부채를 통해 이뤄졌던 것과 결정적으로 구별되는 모습이
아닐수 없다.

"미국경제가 건실한 힘을 뒷받침으로 해 되살아나고 있음은 이런 M&A의
환골탈태에 의해서도 확인된다"는 이동호얼라이언스 캐피털증권사
선임딜러는 "과거의 M&A가 거품을 좇아 일확천금만을 노리는 오도된
아메리칸 드림의 전형이었다면 요즘 제방향을 찾아가고있는 전략적
기업결합형 M&A야말로 미국경제가 지닌 저력이자 아메리칸 드림의 원형
으로 봐야한다"고 진단한다.

불과 몇년사이에 일탈한 자본주의의 "일그러진" 자화상을 씻어내고 무섭게
변신하는 미국기업들의 자기복원력에서도 "주식회사 미국"의 숨가쁜 뜀박질
을 엿볼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