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에르 로지에라는 14세기의 프랑스 승려는 여자문제때문에 한 학생과
다투다가 머리를 호되게 얻어 맞아 뇌출혈을 일으켰다. 의사로부터 수술을
받고 머리가 그 이전보다 훨씬 좋아진 그는 뒷날 교황이 되었다.
클레멘스6세다. 또 뇌손상으로 오랜 혼수상태에 있던 환자가 어느날
갑자기 정상으로 되돌아 오는가하면 뇌를 다쳐 기억상실증에 걸린 사람이
외부충격을 받고서 기억을 되찾게도 된다.

뇌세포는 한번 손상을 입으면 재생될수 없다는게 통설이긴 하나 뇌손상의
어느 한계내에서는 소생이 가능할 정도로 뇌의 세계는 오묘하다. 오늘날
뇌사문제를 둘러싸고 끊임없이 논쟁이 벌어져 온 것도 이러한 부가해의
생리학적 뇌기능때문인지도 모른다.

논란의 첫 사례는 미국에서 찾아진다. 1968년 버지니아주의 한
흑인노동자가 머리에 중상을 입고 병원에서 인공호흡기로 생명을
이어가던중 병원측은 뇌파검사를 통해 뇌기능이 정지되어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판정을 내리고 그 사람의 심장을 환자에게 이식해 주게 된다.
그런데 유족들은 비록 인공호흡이라하더라도 뛰고있는 심장을 떼어낸 것은
고의적 살인이라고 법원에 제소를 한다. 주법정은 "뇌기능정지가 곧
사망"이라는 판결을 내려 원고측의 패소로 끝났다.

이를 계기로 하버드의대는 "뇌사정의특위"를 만들어 사망기준을 순환기
호흡기 뇌의 기능중 어느 한가지라도 정지되었을 때로 규정함으로써 호흡이
정지되었을 때만을 사망으로 보는 종래의 기준에 일대전기를 마련한다.

뇌사의 구체적인 의학적 기준은 같은 해 호주에서 열린
세계의학협회총회의 "시드니선언"에서 제시된다. 외부의 자극에 반응이
없는 깊은 혼수상태,두눈의 동공확대및 동공의 대광반사와 각막반사의 완전
소실,호흡정지,뇌파의 평탄화,혈압의 급격한 저하등 다섯가지 조건이
6시간후에도 똑같은 상태일 때다.

그뒤 미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 뇌사가 의학뿐만 아니라 법률면에서
인정되게 되었다. 근년들어 한국의료계에서도 뇌사자의 각종 장기이식이
공공연히 이루어져 왔는데도 우리 나름의 뇌사판정기준이나 법적 뒷받침이
없었다. 어제 서울대병원이 드디어 처음으로 뇌사판정기준을 마련하여
선포식을 가졌다. 뒤늦은 감이 있지만 꺼져가는 생명들에게 한줄기 밝은
빛이 아닐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