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연하겠다는 새해 결심은 이미 실패한 지 오래. 남은 열한 달 담배 피우면서 내년 새해 결심이나 짜야지.”(다음 아이디 sun****)지난 15일자 김과장 이대리 <새해 목표 달성, 열정과 핑계 사이> 기사에 달린 댓글이다. 이 기사는 새해를 맞아 직장인들이 세우는 목표와 새해 결심을 연말까지 지키려는 노력을 다뤘다. 금연 다이어트 등 김과장 이대리들의 세밑 바람은 물론 직장 동료와의 내기 등 구체적인 목표 달성 계획을 다뤄 많은 호응을 얻었다.네티즌들은 “결심을 3일이나 지키는 ‘작심 3일’도 어렵다”는 푸념을 주로 늘어놓았다. 네이버 아이디 aran****은 “매년 운동해야지 하는데 헬스장 잘 안 가지네요. 새해가 된 지 한 달 지났는데 한 번도 안 갔어요”라며 “헬스장에 매해 초 기부하는 기분”이라고 털어놨다. 새해 목표로 세웠던 금연에 이미 실패했다는 김과장 이대리들의 의견도 이어졌다.네이버 아이디 zza8****은 “작년부터 사용하던 전자담배도 친구한테 줘버리고 세웠던 금연이라는 목표가 무너지는 데는 정확하게 2주면 충분했다”며 “연말 인사 이후 새로 온 팀장님이 너무 빡빡하다 보니 담배 없이는 회사를 못 다니겠더라”고 말했다.연초 잦은 술자리 때문에 새해 결심을 설날 이후에 다시 세우겠다는 김과장 이대리도 있었다. 네이버 아이디 six_****는 “신년회, 설 명절 지나고 신년계획 짜려고 한다”며 “이 핑계 저 핑계로 술 마시다 보면 금주 금연 다이어트, 뭘 계획으로 세워도 1주일도 안돼 실패하기 마련”이라고 댓글을 달았다.새해 목표를 소박하게 잡거나 안 세운다는 의견도 나왔다. 네이버 아이디 summ****은 “어차피 작심삼일인 새해 목표를 안 세운 지 오래됐다. 목표를 세워봐야 자괴감만 커진다”고 적었다.김순신 기자 soonsin2@hankyung.com
전자제품 제조업체에 다니는 2년 차 직장인 이 사원(29)은 지난해 연말정산을 떠올리면 쓴웃음이 난다. 당시 아무런 대비 없이 연말정산을 했다가 50만원에 달하는 돈을 토해냈기 때문이다. 그는 미혼이고 큰돈을 쓴 적도 없는 데다 연금저축, 개인형 퇴직연금(IRP) 등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에도 가입하지 않은 상태였다. 그 뒤 이런 낭패를 피하려고 세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금융상품에 가입하고 공제율이 큰 체크카드 사용을 생활화했다.이뿐만 아니다. 유튜브에서 ‘연말정산 토해내지 않는 법’ 등 동영상을 보며 공부도 한다. 남들은 유난 떤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그의 생각은 다르다. 이 사원은 “재테크 공부는 그렇게 열심히 하면서 연말정산을 우습게 보는 건 잘못”이라며 “지금처럼 금리가 낮을 때는 적금에 드는 것보다 세제 혜택을 받는 게 유리하다”고 말했다.혹자는 연말정산을 ‘13월의 월급’이라고 부른다. 연말정산으로 돌려받는 돈이 많다는 뜻이다. 그러나 주위를 둘러보면 이런 ‘훈훈한 사례’는 찾기 쉽지 않다. 그보다는 돈을 더 내게 돼 ‘멘붕’이 오거나 쥐꼬리만큼 돌려받기 위해 번거로운 서류 처리를 해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연말정산을 둘러싼 김과장 이대리들의 애환을 들어봤다.더 토해낸 아픈 기억…“반복 않겠다” 열공국회 야당 의원실에서 일하는 이 보좌관(33)은 올해 여느 때보다 아내의 수입·지출 내역을 꼼꼼히 파악하며 연말정산을 준비하고 있다. 매년 돈을 돌려받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70만원가량을 더 냈기 때문이다. 이 보좌관은 국세청에 문의해 아내가 휴직했을 때 지출 처리를 잘못한 게 원인이라는 걸 알게 됐다. 아내는 소득이 없기 때문에 지출을 이 보좌관이 한 것으로 처리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던 것이다. 이 보좌관은 “지난해 5월 재신청을 통해 돌려받을 기회도 있었지만 이마저도 바쁜 업무로 하지 못했다”고 아쉬워했다.중견 식품회사에 다니는 이 주임(29)은 아직도 연말정산이 낯설다. 입사 초기에 100만원 넘게 토해냈던 기억이 있어 지난해에는 이를 갈고 준비했지만 이번에도 놓친 게 많았다. 대표적인 게 주택청약종합저축통장이다. 연말정산에서 소득공제를 받을 수 있고 주택 마련까지 생각하면 일찍 가입할수록 좋겠다는 판단이 들어 작년 초 은행 창구를 찾아가 서둘러 가입했다. 그런데 막상 작년 연말정산 모의계산을 돌려보니 주택청약종합저축 내역이 잡혀 있지 않았다. 이 주임은 “연봉 등 기타 조건을 모두 충족했지만 ‘무주택 확인서’를 내지 않아 누락됐던 것”이라며 “주변 지인들에게 조언을 많이 듣고 다녔는데 또 이런 복병이 곳곳에 있을 줄은 몰랐다”고 푸념했다.시부모님 덕택에 연말정산 횡재 사례도드물지만 연말정산으로 횡재를 하는 사례가 있다. 화학회사 재무팀에서 일하는 김 대리(33)는 올해 연말정산 결과를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다. 시부모님 덕택에 수십만원을 돌려받을 가능성이 높아서다. 기술자로 일했던 시아버지는 최근 일을 그만둬 소득이 많이 줄었다. 이 영향으로 시부모님 내외가 모두 남편의 의료보험 피부양자가 됐다. 김 대리는 남편 명의로 관련 비용을 공제받기 위해 시부모님의 연말정산 내역을 확인했다.그 결과 두 분이 최근 5년간 신용카드와 의료비 등으로 큰돈을 쓰고도 이를 연말정산으로 처리하지 않은 걸 발견했다. 연세가 드신 터라 복잡한 행정처리를 못했던 것이다. 그는 신용카드 등 내역이 뻔히 보이는 소비도 연말정산을 안 하면 반영이 안 된다는 걸 알게 됐다. 시부모님이 부양가족으로 등재되기 전에 쓴 돈도 현재 부양가족이 됐다면 남편이 혜택을 볼 수 있다. 김 대리는 “지금껏 이런 걸 챙긴 적이 없다고 하시니 5년치 경정청구부터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연말정산 무관심족’도 있다. 서울 대기업에서 일하는 양 과장이 그런 사례다. 그는 부양가족도 없고 의료비도 많이 안 쓴다. 연말정산에서 유리한 점이 거의 없다. 최근에는 돈을 모아 집을 샀는데 이것도 걱정이다. 임차인 생활을 할 때보다 연말정산에서 불리하기 때문이다. 양 과장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처럼 기대했는데 쥐꼬리만큼 돌려받거나 더 내는 일이 반복되다 보니 오히려 이제는 무덤덤해졌다”고 했다.진땀 흘리는 금융맨 “연말정산, 나도 몰라요”연말정산을 무분별한 소비에 대한 ‘반성의 계기’로 삼는 사람도 있다. 법무법인에 다니는 정 대리(29)는 연말정산을 위해 자신의 소비 내역을 확인했다가 두 눈을 의심했다. 한 해 동안 무려 4500만원을 쓴 것이다. 신용카드 사용액만 4000만원이 넘었다. 정 대리는 “작년에는 한 푼이라도 더 공제받으려고 노력했는데 올해는 지출액 대부분이 신용카드여서 공제액도 많지 않을 것 같다”며 “올해엔 적금이라도 하나 더 들어야겠다”고 다짐했다.이직을 한 사람은 이전 직장에 연락해 필요한 서류를 요청하는 어색함을 겪기도 한다. 지난해 말 부동산 관련 업체로 이직한 정 과장이 그런 사례다. 그는 최근 연말정산과 관련해 전 직장에 연락했다가 “직접 와서 확인한 뒤 찾아가라”는 말을 들었다. 정 과장은 “나쁜 일로 나온 것도 아니고 좋은 제의를 받아 이동한 것인데도 다시 이전 회사에 방문하는 건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금융맨들은 연말정산 기간에 각종 민원을 처리해 주느라 진땀을 뺀다. 시중은행에 근무하는 박 과장(34)은 매년 1월이면 친척이나 친구들 연말정산 문의를 받느라 정신이 없다. 박 과장이라고 관련 내용을 제대로 아는 건 아니다. 하지만 잘 모른다며 문의를 물리치지도 못한다. 박 과장은 자존심 때문에 국세청 문서를 정독하며 안내해준다. 그는 “은행원들도 연말정산할 때면 ‘소득공제율이 높은 체크카드를 더 쓸걸’ 하고 후회하는 평범한 직장인일 뿐”이라고 했다.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철강회사에 다니는 고 과장(35)은 입사동기인 황 과장(36)의 ‘금연성공기’에 자극받았다. 황 과장이 금연한다는 것까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매주 아낀 담뱃값을 카카오페이 자유적금으로 부어 말레이시아로 여행을 다녀왔다는 얘기는 충격의 강도가 달랐다. 주변에서 여러 번 들어본 ‘금연적금’이지만 바로 앞에서 모범사례를 보고 나니 정신이 번쩍 들었다. 건강과 여행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이토록 멋지게 잡아내다니. 고 과장은 곧바로 연 2%짜리 자유적금에 가입했다. 매주 9000원씩 붓기로 했다. 2년이 지나면 원금만 100만원이다. 신년 아침에 다섯 살배기 아들과 2년간 모은 적금으로 여행가기로 손도장도 찍었다.고 과장처럼 의지에 불타는 직장인도 있지만, 대다수 김과장 이대리의 현실은 ‘작심 한 달’이다. 구인구직 사이트 알바몬과 잡코리아가 지난달 17일부터 21일까지 성인남녀 1004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신년 계획을 1년 내내 지킨다’고 답한 사람은 28.8%에 그쳤다. ‘채 한 달도 못 넘긴다’ 대답은 26.1%였고, ‘반년 정도 지킨다’는 14.2%, ‘매년 3월 정도까지 지키다가 포기한다’는 답변은 9.0%였다. 이들이 자신에게 매긴 점수는 평균 54점으로 낙제 수준이었다. 신년 계획을 둘러싼 김과장 이대리들의 사연을 들어봤다.“분기마다 실적 공개합니다.”전자회사에 다니는 이 대리(35)는 7년째 재무팀에서 관리회계를 담당하고 있다. 종종 공장을 찾아가 현금 흐름을 점검하고, 유휴 자산의 활용 방안도 고민한다. 하지만 정작 본인의 재테크는 개점 휴업 상태다. 주말에도 출근하기를 6개월째. 일에 집중하다 보니 증권 계좌를 열어본 지도 오래됐다. 그의 신년 계획은 나만의 재무제표를 만들고, 투자성적표를 분기마다 공개하는 것이다. 유흥비 등 불필요한 지출 항목은 별도로 묶어 집중 관리하기로 했다. 이 대리는 “나 자신에게 투자하는 투자회사를 따로 하나 만드는 셈”이라고 말했다.시중은행에 다니는 박 과장(36)은 올해를 충실하게 보내기 위해 일찌감치 15개 신년 목표를 세웠다. 다이어트와 운동, 금연, 자격증 취득 등 신년 계획 4종 세트는 기본. 새해 출근길부터 커피도 끊었다. 하루 2만원씩 쓰던 커피값을 줄여 자기 계발 비용으로 쓰기로 했다.정상치를 훌쩍 넘어선 체지방과 콜레스테롤 조절을 위해 하루 한 시간 헬스장 가기에도 재도전하고 있다. 해외 근무 지원을 위한 외국어 공부도 현재진행형이다. 일단 새해 첫 2주 동안은 성공적이다. 하지만 자신은 없다. 매년 중도 포기한 자신을 너무 잘 알기 때문이다. 박 과장은 “올해 연말에는 한 개라도 지켰다고 자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결혼 앞둔 이 대리 ‘독하게 배수진’출판사에 다니는 이 대리(32)는 올봄에 치를 결혼식이 걱정이다. 생애 한 번 입는 드레스를 멋지게 소화하려면 다이어트가 필수다. 이 대리는 같은 팀 여직원 4명과 함께 5㎏ 감량을 목표로 5만원씩 걸기로 했다. 기한은 두 달, 감량에 성공한 사람이 돈을 독식한다. “결혼식 앞두고 무리하게 살을 빼다가 결혼식에서 쓰러지는 경우도 있다고 하지만 어쩔 수 없죠. 넋 놓고 있다가 매년 작심삼일로 실패했는데, 이제는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네요.”제약업체에서 영업을 하고 있는 최 대리(31)는 수십 번 넘게 실패한 금연을 다시 새해 목표로 정했다. 이번엔 각오가 남다르다. 최근 건강검진에서 비만에 고혈압 진단까지 받았기 때문이다. 입사 때만 해도 170㎝에 60㎏으로 호리호리한 체격이던 최 대리다. 하지만 올초 영업팀으로 옮긴 뒤 몸무게가 15㎏이나 불었다.매년 귓등으로만 듣던 “운동 열심히 하고 술은 덜 먹고 담배는 끊으라”는 의사의 말이 이번엔 묵직하게 들렸다. 건강이 상했다고 부서를 옮길 수도 없다. 특별한 계획은 없다. 금연에 성공한 주변 사람들도 별다른 비결은 없는 것 같았다. 최 대리는 “거울을 볼 때마다 살 찌고 거뭇해진 내 모습에 자극을 받는다”고 했다.쓰라린 작심삼일의 데자뷔전자회사 재무팀에서 일하지만 여태 가계부를 제대로 쓴 적이 없는 이 대리(32)의 연필통에는 오색 펜이 한가득이다. 그가 입사한 4년 전부터 매년 초 365일 가계부 쓰기를 목표로 모은 펜들이다. 하지만 연차가 쌓일수록, 후배 직원이 늘어날수록 더 바빠질 줄은 몰랐다. 이 대리는 “채 두 달을 못 넘기고 가계부 쓰기를 멈추다 보니 스트레스만 받는다”며 “이제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겠다”고 선언했다. 아예 가계부를 쓰겠다는 각오 자체를 포기하기로 했다.정석(?)대로 작심삼일에 그치고 마는 직장인도 속출한다. 나이 서른이지만 여전히 ‘솔로’인 오 주임은 매년 ‘이번 크리스마스는 여자친구와 함께’를 새해 슬로건으로 삼았다. 하지만 동료들과의 술자리는 너무 유혹적이다. 남들은 연인과 함께 길거리를 거닐었을 신년에도 새벽까지 술자리를 달렸다. 작년 연말에는 ‘10도 이상 술은 먹지 않겠다’며 25회짜리 개인트레이너(PT) 운동권을 샀다. 하지만 아직 한 장도 사용하지 못했다.작심삼일의 이유도 가지각색이다. 올초 수영을 배우기로 한 강모 과장(37)의 앞에 나타난 암초는 ‘실연’이다. 그는 연말 소개팅에서 만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다 대화가 통해 같이 수영을 하자고 약속했다. 하지만 이내 그 남자와의 관계가 흐지부지돼 버렸다. 신년 계획도 포기했다. 집도 비슷한 곳에 있어 혹시 마주칠까 봐 아예 수영장 근처에도 가지 못한다.중소기업에 다니는 이 과장의 작년 목표는 체중 5㎏ 감량이었다. 가을께 목표치에 도달했다. ‘얼굴이 좋아졌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눈에 띄게 살이 빠졌다. 복병은 겨울바람과 함께 찾아왔다. 송년회 시즌이 시작되면서 폭식과 폭음이 이어졌다. 연말엔 결국 원점으로 되돌아갔다. 이 과장은 “올해도 체중 감량을 신년 목표로 세우긴 했지만 솔직히 엄두가 안 난다”고 푸념했다.박진우 기자 jw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