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자동차산업을 떠받치는 부품업체들이 말라죽기 직전이다. 지난해 중국의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보복’에 이어 올 들어 한국GM의 군산공장 폐쇄까지 맞물리며 1년 넘게 고전해온 완성차업계의 후유증이 본격화한 탓이다. 공장 가동률은 반토막이 나고, 적자를 본 기업이 속출하고 있다. 운영 자금도 마른 지 오래다. 쓰러지는 곳도 잇따르고 있다. 현대자동차 1차 협력사인 리한이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신청한 데 이어 중견 부품사 다이나맥, 금문산업 등이 줄줄이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에 들어갔다. 국내 제조업 일자리의 12%, 수출액의 13%가량(2016년 기준)을 차지하는 자동차산업이 붕괴할 수 있다는 경고가 그치지 않고 있다.
'적자 늪'에 28兆 은행빚 상환 압력까지…車부품사들 "줄도산 직전"
◆은행권 중점관리대상 된 車 부품업계

상당수 부품사는 ‘폐업’ 위기에 놓여 있다. ‘완성차업계 판매 부진→공장 가동률 하락→영업이익 급감 또는 적자 전환→금융권의 대출 회수 및 신규 대출 중단→자금난’이란 악순환의 굴레에 갇히면서다.

‘적자의 늪’에 빠진 곳도 적지 않다. 한국경제신문이 상장 부품사 82곳의 올 상반기 실적을 조사한 결과 25곳이 적자를 낸 것으로 파악됐다. 2년 새 적자 기업은 두 배 이상으로 불어났다. 52곳은 지난해 상반기보다 매출이 줄어 성장엔진이 꺼져가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업계에선 “더 이상 버티기 힘든 한계에 직면했다”고 입을 모은다.

앞으로가 더 문제라는 관측도 나온다. 은행권이 어음 할인이나 기존 대출 상환 만기 연장을 거부하는 등 ‘돈줄’을 죄고 있어서다. 은행들이 대출 회수에 나서면서 당장 돈을 갚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업체도 많아지고 있다.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은행 등 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28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부품사들이 신규 대출을 받는 건 ‘언감생심’이라는 게 업계의 얘기다. 몇몇 시중은행은 자동차 부품사들을 아예 ‘중점관리대상’으로 분류해 거래 자체를 대폭 축소하고 있다. 한 부품사 대표는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나서 은행을 돌아다녀도 돈을 꾸기가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적자 늪'에 28兆 은행빚 상환 압력까지…車부품사들 "줄도산 직전"
급기야 최종구 금융위원장까지 직접 나섰다. 그는 최근 은행장들과 현장 간담회를 하고 “은행들이 ‘비 올 때 우산 뺏는’ 행태를 보이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자동차 부품회사에 대한 대출 회수를 자제해달라는 당부였다. 하지만 은행들이 이를 따를지는 미지수다. 여신 건전성을 관리해야 하는 은행들로선 마냥 빚 상환을 미뤄줄 수는 없어서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과거 조선업체에 대한 여신을 빨리 회수하지 못해 대규모 대손충당금을 쌓았던 기억 때문에 은행들이 자동차 부품업체를 무작정 도와주긴 곤란하다”고 토로했다.

◆“내년엔 심각한 상황 맞을 수도”

2·3차 협력사의 상황은 더 심각하다. 폐업에 내몰린 2·3차 부품사들이 1차 협력사를 대상으로 자사의 설비를 높은 가격에 인수해달라고 요구하는 사례도 속출하고 있다. 경북 영천에서 공장을 운영 중인 한 부품사 대표는 “공장이나 설비를 사주지 않으면 시너를 뿌려 태우겠다는 하청업체까지 있다”며 “부품을 대는 2·3차 협력사가 금형 등 설비를 없애면 생산라인을 곧바로 멈출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고 하소연했다.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금융위원회 등 정부 부처들은 뒤늦게 자동차 부품산업 실태 조사 및 지원 대책 마련에 나섰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르면 다음달 자동차산업 전반에 대한 종합대책을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위는 산업은행과 기업은행 등 국책은행을 통해 자동차 부품업체를 대상으로 한 정책금융을 확대할 계획이다. 신용보증기금과 기술보증기금 등의 보증 규모를 늘리는 방안도 검토 중이다. 기존 대출 상환 만기를 연장해주고 신규 대출에도 숨통을 틔워주기 위해서다. 산업부는 기존에 운용하는 펀드 등을 확대하는 방안을 고려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정부는 올해 말 끝나는 개별소비세 인하 조치(5.0%→3.5%)를 내년 상반기까지 연장하고 추가 세제 지원 방안도 검토 중이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완성차업체의 1차 협력업체 한 곳이 흔들리면 2·3차 업체 수십 곳이 직격탄을 맞는다”며 “특단의 대책이 나오지 않으면 내년 상반기에 심각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장창민 기자 cm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