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이 교착상태에 빠졌을 때…공정한 중재 절차부터 찾아라
케이크 하나를 반으로 나눠
각자 고르게 하면 불만 없듯
협상에서 이익 놓고 싸울 때
눈앞의 이슈에 집착하기보단
공평한 협상절차 먼저 고민을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서로 더 많이 갖겠다고 다투는 둘. 돈 앞에서는 부모 자식도 없다는 옛말이 실감난다. 이러다 형제간 우애가 깨지지나 않을까 걱정이다. 두 아들과 박 회장 자신 모두 만족할 만한 공평한 상속 방법은 없을까? 1973년 유엔도 이와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태평양 등 공해의 심해에 묻혀 있는 희귀 광물 자원 채굴권을 놓고 각 나라의 이해 관계가 얽혀 협상이 앞으로 나아갈 기미가 없었다.
몇 년의 지루한 싸움 끝에 일단 대상 해역의 절반은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 기업의 컨소시엄이, 나머지 절반은 후진국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한 ‘엔터프라이즈’에서 갖는 것을 원칙으로 정했다. 여기서 또 문제가 생겼다. 구역을 어떻게 나눌 것인가 하는 문제였다. 엔터프라이즈는 지도 위에 선을 그었다 지웠다를 반복했다. 자신이 고른 구역에 광물 자원이 얼마나 매장돼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선택권을 선진국 기업에 내줄 수도 없었다. 이미 충분한 정보를 가진 선진국들이 가치 있는 광물이 묻혀 있을 만한 지역을 독식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이다.
사업 구역 선정을 놓고 협상이 꽉 막힌 상황. 이때 기가 막힌 해결책이 나왔다. 선진국 기업 컨소시엄이 구역을 반으로 나누고 엔터프라이즈가 하나를 고르는 것이었다. 이렇게 되면 선진국들은 최대한 공정하게 구역을 나눌 수밖에 없게 된다. 자칫 잘못하다간 엔터프라이즈에 노른자 땅을 다 내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방법으로 10년간 끌던 협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이것은 우리가 흔히 ‘케이크 나누기 방법’이라고 말하는 원리가 그대로 적용된 사례다. 하나의 케이크를 두고 서로 많이 먹겠다고 싸우는 두 아이. 한 명이 케이크를 반으로 나누고 다른 한 명이 고르면 불만을 말할 수 없게 된다. 10년 동안 유엔의 골머리를 썩인 협상이 이 간단한 원리로 해결됐다.
앞의 상황으로 되돌아가 보자. 다섯 개 사업체를 두 아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줄 방법을 고민하는 박 회장은 어떻게 하면 될까? 한 명의 아들이 다섯 개 사업체를 절반으로 구분하게 한다. 그리고 다른 한 아들이 둘 중 한 부분을 고르면 된다. 이것이 협상에서 ‘공정한 절차’가 갖는 힘이다. 이 방법 외에도 다양한 공정한 절차가 가능하다. 협상이 여러 번 이뤄진다면 ‘차례대로 결정하는 것’도 한 방법이 된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장소를 두고 공방을 벌일 때 이 방식을 채택했다. 초반에 기선 제압을 위해선 협상 장소 선정이 매우 중요했다. 서로 유리한 장소를 주장했고 결국 차례대로 ‘홈앤드어웨이’ 방식으로 결정했다.
서로 믿을 만한 제3자가 있다면, 3자가 중재하도록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협상이 교착 상태에 들어갔을 때 법원의 판결과 중재, 또는 정부나 협회의 중재를 통해 해결하는 것이다. 눈앞의 이슈를 어떻게 풀 수 있을까 고민하기 전에 협상 절차를 어떻게 바꿀 수 있을지를 먼저 고민해 보라. 그럼 케이크 자르기처럼 새로운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이태석 < IGM 세계경영연구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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