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아침의 인물] '노예해방 선언' 에이브러햄 링컨
미국 남북전쟁이 한창이던 1862년 9월22일,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은 ‘노예해방 예비선언’을 발표했다. 북부군이 앤티텀 전투에서 승기를 잡은 직후였다. 링컨은 이 선언을 통해 연방에서 탈퇴한 남부 여러 주가 1863년 1월1일까지 연방에 복귀하지 않으면 해당 주의 노예들을 모두 해방하겠다고 경고했다. 남부 자치주들은 이에 응하지 않았고, 이 선언은 1863년 1월1일 정식 포고됐다.

1801년 켄터키주에서 가난한 농민의 아들로 태어난 링컨은 독학으로 변호사가 됐다. 1834년 일리노이주 의회 의원으로 선출됐고, 1847년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공화당에 입당한 그는 1858년 민주당의 스티븐 A 더글러스와 노예제 폐지 논쟁을 벌이며 전국구 스타로 떠올랐다. 1860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로 지명됐고, 그해 11월 대선에서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1861년 남북전쟁이 일어났다. 그는 노예제 폐지를 공언하면서 국내외 여론을 유리하게 이끌었고 1864년 재선에 성공했다. 이듬해 남군의 항복으로 남북전쟁은 종결됐다. 하지만 종전 선언 며칠 뒤 워싱턴 포드 극장에서 연극을 관람하던 링컨은 괴한의 총을 맞고 숨을 거뒀다. 링컨은 “자신의 이름이 역사에 남는다면 바로 노예해방 선언 때문일 것”이라고 했다. 후세의 역사는 그의 바람을 따르고 있다.

홍윤정 기자 yjho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