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 & 이대리] 추석 연휴 앞두고 '고민이 풍년'
중공업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32)는 가족과 친척에게 돌릴 추석 선물 때문에 고민에 빠졌다. 지난 5월 결혼식을 올린 뒤 처음 맞는 명절이라 양가뿐만 아니라 친척들에게도 선물을 줘야 하는데 ‘추석 상여금이 안 나온다’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들어서다. 김 대리는 “아내와 상의해봐야겠지만 여윳돈이 부족해서 고가 선물은 마련하기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추석을 앞둔 직장인들은 가족과 함께한다는 기쁨보다는 걱정거리가 많다고 하소연한다. 폭염과 태풍으로 제수용품 가격은 급격히 올랐는데 지갑은 오히려 얇아졌다고 울상이다.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을 떠나려던 미혼 직장인들은 저렴한 ‘홈케이션(home과 vacation의 합성어)’으로 돌아섰다. 민족 최대 명절 한가위를 앞두고 울고 웃는 김과장, 이대리의 사연을 들어봤다.

“쉴 수 있으면 다행이지”

명절 연휴라고 모두 쉴 수 있는 건 아니다. 평소보다 더 바쁘게 일해야 하는 회사와 부서도 많다. 시중은행에 다니는 주 대리(33)도 그렇다. 그는 올초부터 금융 기기를 버스에 싣고 전국을 누비는 이동점포에서 근무하고 있다. 이번 추석엔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신권을 바꿔주고 돈 봉투를 나눠주는 일을 해야 한다. 김 대리는 “남들은 고향으로 기분 좋게 내려가겠지만 이동점포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1년 중 가장 바쁜 시기”라며 “사람들이 많이 찾는 만원짜리 신권이 부족할까 봐 벌써부터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통회사에 다니는 김 과장(37)도 추석 연휴에 비상 대기해야 할 처지다. 연휴 직후 예고된 ‘인사 시즌’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인사 전에 준비해야 하는 업무도 많지만 윗사람들 눈치 보는 일이 8할이다. 연휴 기간에 임원들이 언제 출근하는지 확인한 뒤 해당 부서에 출근 소식을 통보해야 한다. 눈도장을 찍으려는 일부 부원의 요청 때문이다. 김 과장은 “연휴 내내 출근할 가능성이 높아 추석 당일까지 모든 일정을 비워뒀다”며 “하루라도 제대로 쉴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열공 모드… 효도에 ‘뿌듯’

물론 이번 연휴를 기대하는 직장인도 있다. 중견 건설사에 다니는 박 과장(37)은 이번 연휴 기간이 공인중개사 시험을 준비할 꿀 같은 기회다. 그는 부동산중개업소를 운영하는 어머니의 권유로 2개월 전부터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하고 있다. 그동안 회사 업무에 밀려 제대로 공부하지 못했는데 이번 연휴는 공부를 제대로 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다. “이번에 부족했던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서 다음달 치를 공인중개사 필기시험에서 꼭 합격점을 받고 싶어요.”

서울 강남의 노무법인에 다니는 신 노무사(33)는 이번 연휴에 부모님이 운영하는 독서실을 지킬 예정이다. 오랜만에 그의 부모님이 미국에 있는 큰아버지댁에 가시기 때문이다. 아내와 함께 독서실 관리를 해야 하는 터라 세 살짜리 아들까지 처가에 맡겨야 하지만 부모님께 효도한다는 생각에 뿌듯하기도 하다. 신 노무사는 “푹 쉬고 싶지만 휴일 없이 일하는 부모님께 유일하게 쉴 수 있는 기간을 과감하게 양보했다”고 말했다.

얇은 지갑 탓에 ‘방콕’ 신세

추석 연휴에 해외여행을 가는 직장인이 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홈케이션으로 만족하는 직장인도 많다. 유통업체에 다니는 이 과장(35)은 여름 휴가를 이달 말로 미뤘다. 처음엔 추석 연휴와 여름 휴가를 붙여 유럽 여행이라도 다녀올 생각이었는데 텅 빈 통장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아무리 적게 예산을 잡아도 해외여행을 가려면 최소 100만원가량이 들어서다. 이 과장은 집 안에 콕 박혀 책과 드라마를 볼 계획이다. “휴가 분위기는 내고 싶어 휴가 기간에 하루 정도 한강변 호텔을 같이 잡아 파티하려고요.”

고향 집에 가야 하는 미혼 직장인들은 매번 추석 명절이 고통스럽다. 친구 청첩장이라도 받으면 우울한 마음이 배가 된다. 정유회사에 다니는 김 대리(36)는 친척들이 결혼하라고 채근할까 봐 벌써 스트레스를 받는다. 최근 휴가를 다녀와 휴대폰을 확인해 보니 친구들의 결혼식 초청 문자만 5개나 와 있었다. 그는 “집에 가면 고향 친구들의 결혼 소식도 들릴 텐데 걱정”이라고 말했다. 전자회사에 근무하는 이 사원(31)도 회사 후배, 동기, 선배들의 잇단 결혼 소식을 전해듣고는 급하게 소개팅을 알아보고 있다.

시집살이는 ‘ing’

추석을 맞은 며느리들의 스트레스지수는 예나 지금이나 최고치다. 전자업체에 다니는 안 대리(35)는 추석 연휴에 가족 여행을 가자는 시어머니 때문에 속앓이하고 있다. 안 대리는 지난 설 연휴에도 시집 식구들과 강원 속초에 다녀왔다. 시어머니가 “미리 차례를 지내고 연휴에는 가족 여행을 다녀오자”고 제안해서다.

시어머니는 가족 여행을 가면 가족끼리 돈독해지고 며느리들도 편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안 대리를 비롯한 며느리들은 불만이다. 연휴 내내 일은 일대로 하고 휴식 시간만 줄어든다고 하소연이다. 거기다 연휴에 친정에 갈 수 없어 속상한 마음도 크다. “시어머니가 너무 만족스러워하며 ‘명절 연휴=가족 여행’을 정례화하려고 하더라고요. 저는 당일에 차례 지내고 헤어지는 게 가장 좋아요.”

외국계 기업에 다니는 박 과장(34)도 명절 내내 시집에 있으라고 강요하는 시부모 탓에 울상이다. 박 과장의 시집은 대구이고 친정은 서울이다. 그러다 보니 시어머니는 결혼 후 첫 명절부터 “친정엔 평소 자주 갈 수 있으니 명절엔 계속 대구에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처음엔 남편이 나서서 처가에도 가야 한다고 했지만 작년 손녀가 태어나자 시부모의 요구가 더 거세졌다. 이번 명절에도 어김없이 대구에 계속 있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박 과장은 “친정이 아무리 가까워도 회사 생활하다 보면 명절 때나 가게 된다”며 “친정 부모님도 손녀를 매우 보고 싶어 하는데 서운하다”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