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 통과를 위한 임시 주주총회를 취소하고 모든 방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시장에서는 현대차그룹의 선택지가 많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기존 개편안을 유지하면서 미세조정을 하기에는 시장의 ‘재반발’이 우려되고, 개편 방식을 새로 짜기엔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현대차그룹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를 분할·합병하는 기존 지배구조 개편안을 그대로 가져가려면 두 회사의 분할·합병 비율 조정이 필수적이라는 게 시장의 지배적 목소리다. 현대차그룹의 개편안에 반대한 세력들이 가장 크게 문제삼았던 대목이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분할·합병 비율(0.61 대 1)이었기 때문이다. 이들은 현대모비스에서 분할되는 모듈사업(개별 부품을 조립해 덩어리로 만드는 사업)과 애프터서비스(AS) 부품사업의 가치가 저평가됐다고 주장했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하는 방안을 검토할 가능성이 크다”며 “이 방안은 연내 지배구조 개편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분할·합병 비율을 조정하는 방식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다. 증권가에서는 현대모비스 분할법인을 상장한 뒤 시간을 두고 현대글로비스와 합병하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현대모비스 분할법인의 가치 평가를 시장에 맡기면 합병 비율에 대한 논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논리다.

다만 미국 행동주의 헤지펀드 엘리엇매니지먼트와 세계 최대 의결권 자문사 ISS처럼 현대모비스와 현대글로비스의 합병 자체를 반대하는 시장 관계자를 설득할 수 없다는 점은 한계로 지적된다.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안을 원점에서 재검토하는 방안을 선택하기도 쉽지 않다는 게 업계의 시각이다. 정부의 요구대로 순환출자 고리를 해소하면서 한국의 복잡한 규제와 제도를 만족시키는 지배구조 개편안을 찾는 일이 쉽지 않아서다. 엘리엇이 요구하는 지주회사 전환은 현대캐피탈 등 금융 계열사를 팔아야 한다는 점에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게 현대차 측 설명이다.

투자은행(IB) 관계자는 “현대차그룹이 내놓은 지배구조 개편안은 한국 사회에서 검토해야 하는 모든 안을 고려해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며 “다른 대안을 내놓기까지 2~3년가량 걸릴 가능성도 있다”고 내다봤다.

일각에서는 현대차그룹이 지배구조 개편 작업을 포기하고 순환출자 고리만 해소하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하지만 결국은 현대차그룹이 어떤 식으로든 지배구조를 개편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이런 선택을 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도병욱 기자 dod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