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타계한 20일 오후 한 직원이 통화를 하며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로 들어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타계한 20일 오후 한 직원이 통화를 하며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로 들어가고 있다. /김범준 기자 bjk07@hankyung.com
구본무 LG그룹 회장이 20일 타계하면서 그룹 경영도 큰 전환점을 맞게 됐다. 구 회장의 외아들인 구광모 LG전자 상무로의 경영 승계는 구 회장 타계 사흘 전인 지난 17일에야 발표됐다. 오너 일가와 그룹 핵심 경영진에게도 구 회장의 타계가 ‘갑작스러운 일’이었다는 점을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만큼 구 상무를 중심으로 한 차기 경영체제로의 이행도 급격하게 이뤄지게 됐다.

◆1969년과 비슷한 2018년

LG그룹 회장이 재임 중 타계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구인회 창업주도 구본무 회장과 같은 질병(뇌종양)으로 1969년 별세했다. 당시 그룹 경영권 이행 과정을 지켜보면 이번 4세 승계 과정도 어느 정도 짐작해볼 수 있다는 게 LG 안팎의 시각이다.
구광모 상무 '4세 경영'… 1969년과 비슷한 승계과정 거칠 듯
1969년 12월31일 구인회 창업주가 타계하자 첫째 동생이자 공동창업자 중 한 명인 고(故) 구철회 당시 락희화학 사장이 먼저 나서 ‘장자 승계 원칙’을 명백히 밝혔다. 구철회 사장은 당시 구자경 금성사 부사장(현 LG그룹 명예회장)을 회장으로 추대한 뒤 경영 퇴진을 선언했다. 또 다른 창업멤버이자 셋째 동생인 구정회 사장은 그룹 기획조정실장을 맡아 조카인 구자경 회장을 보좌하고 경영수업을 받도록 했다. 이 같은 과도 체제가 1년간 이어졌다.

17일 대략적인 윤곽이 나온 구광모 상무로의 승계도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

구자경 명예회장을 도왔던 구정회 사장의 역할은 그룹 내 전문경영인들이 맡게 된다. 하현회 (주)LG 부회장, 박진수 LG화학 부회장, 한상범 LG디스플레이 부회장, 차석용 LG생활건강 부회장, 권영수 LG유플러스 부회장, 조성진 LG전자 부회장 등 6명이다. 이들은 자신이 경영하는 회사는 물론 다른 계열사의 일상적인 경영활동도 챙기며 구광모 상무를 지원할 전망이다. 그룹 차원의 결정이 필요할 때도 자신의 전문 분야를 토대로 구 상무에게 조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LG그룹에 따르면 이 같은 체제는 구광모 상무를 중심으로 한 4세 경영이 완전히 뿌리내릴 때까지 당분간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이 기간이 구자경 명예회장의 경영권 승계 때보다는 길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대체적인 관측이다. 구인회 창업주 별세 당시 이미 부사장으로 경영 보폭을 넓히던 구자경 명예회장과 달리 구광모 상무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적기 때문이다.

◆상속세 9000억원 넘을 수도

부회장단 외에도 주요 계열사 사장들이 ‘구광모 상무 시대’에 핵심적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구광모 상무가 소속된 LG전자 B2B사업본부를 이끌고 있는 권순황 사장과 백상엽 LG CNS 미래전략사업부장(사장), 권봉석 LG전자 HE사업본부장(사장), 정철동 LG화학 정보전자소재사업본부장(사장) 등이 꼽힌다. LG그룹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사업 능력을 검증받은 젊은 경영자들이 더욱 중용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구본무 회장이 소유하고 있는 그룹 지주사 (주)LG 주식 1945만8169주는 구 상무가 물려받게 된다. 18일 종가(7만9800원) 기준으로 약 1조5530억원에 달한다. 주식 상속세는 고인의 사망 시점을 기준으로 전후 2개월의 평균 가격으로 계산한다. 최대주주 지분을 승계하는 데 따른 할증률 20%를 적용하면 과세 대상 주식 가치는 1조8636억원까지 늘어난다. 여기에 상속 규모 30억원 이상에 대한 과세율 50%를 적용하면 내야 할 세금은 9318억원에 이른다.

구광모 상무는 지분 7.5%를 소유한 판토스 등 본인 소유 주식 등을 매각해 상속세 재원을 마련할 것으로 예상된다. (주)LG의 주요주주 지분율은 구본무 회장 11.28%, 구본준 부회장 7.72%, 구광모 상무 6.24% 등이다. 구본무 회장의 지분 중 절반 정도만 물려받아도 11%를 웃도는 지분을 확보해 최대주주에 오르게 된다. 상속세 부담을 낮추기 위해 구 회장 지분의 일부만 상속받고 나머지는 다른 친인척이 나눠 받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