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들 인사 검증서 잇단 고배… 세제실 "고사라도 지내야 하나"
“요즘 세제실 출신들은 왜 이렇게 안 풀리나요. 고사라도 한번 지내야 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지난 22일 신용보증기금의 차기 이사장으로 지원했던 최종 후보 4명이 모두 낙마했다는 뉴스를 접한 기획재정부 세제실의 한 공무원은 이렇게 말했다. 낙마한 후보 중 최영록 전 기재부 세제실장이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최 전 실장은 한때 ‘이사장 내정설’이 나올 정도로 가장 유력한 후보였지만 다른 후보들처럼 문재인 정부의 강화된 검증 절차를 통과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 전 실장의 낙마 소식을 접한 세제실은 뒤숭숭한 분위기다. 이달 초순께까지만 해도 최 전 실장의 후임 세제실장으로 유력했던 전 세제실 국장 A씨가 청와대 검증에서 탈락한 지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았는데, 또 다른 선배 공무원이 ‘인사 고배’를 마셨다는 소식이 전해졌기 때문이다. A 국장이 세제실장에서 탈락한 이후 기재부는 최 전 실장(행시 30회)보다 네 기수 후배인 김병규 전 재산소비세정책관을 지난 20일 신임 세제실장으로 임명하는 ‘기수 파괴’ 인사도 했다.

과거 세제실장은 ‘다음 자리’가 보장된 보직이었다. 세제실장을 거친 인사는 대부분 ‘승승장구’했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김진표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이용섭 전 건설교통부 장관 등은 1990년대 중반~2000년대 초반 세제실장을 마친 뒤 승진을 거듭하면서 부총리나 장관 자리에 올랐다. 장관은 못 해도 차관급 외청장으로 영전하는 게 관행처럼 되다시피 했다. 허용석 윤영선 주영섭 백운찬 김낙회 등 2008년 3월부터 2016년 5월까지 다섯 명의 관세청장은 모두 세제실장을 마친 뒤 청장으로 승진했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 말기부터 이런 관행이 깨졌다. 문창용 자산관리공사 사장은 2014년 8월부터 2년 가까이 세제실장을 지냈지만 차관 승진을 못했다. 문 사장은 2016년 7월 세제실장을 그만둔 뒤 그해 11월 자산관리공사 사장으로 선임됐다. 문 사장의 뒤를 이은 최 전 실장도 차관으로 승진하지 못하고 공기업 최고경영자(CEO)로 옮기려 했지만 이마저 물거품이 됐다.

세제실 관계자는 “세제실 업무는 전문성은 높지만 거시 예산 국제금융 등 넓은 시야를 키우는 데 한계가 있다”며 “세제실장들이 영전하지 못하고 공무원 생활을 그만두는 일이 되풀이되면서 후배들의 세제실 근무 기피 현상이 나타날까 걱정된다”고 말했다.

이상열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