빗나간 전력 수요 예측… 툭하면 "공장 전기 꺼라"
'역대급' 원전 3기 생산량 감축 요구
잦은 급전지시에 기업들 "응하지 않겠다"
"탈원전 땐 전력 부족사태 일상화될 것"
산업부, 정비 등 이유로 원전 9기 가동 멈춰
한파로 수요 늘자 '화들짝'
산업부가 이날 기업들에 감축을 요청한 전기량 3300㎿는 2014년 제도 도입 후 가장 많은 규모다. 원자력발전소 설비용량이 1000㎿인 점을 고려하면 원전 3기가 생산하는 양만큼의 전기를 줄이라고 요구한 것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전력 수요가 크게 늘지 않는다고 예상한 게 비현실적이었다는 것이 드러나고 있다”며 “이런 추세라면 지금보다 5~10년 후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력 수요감축 요청(급전지시)은 이번 겨울 들어 다섯 번 발동됐다. 작년 12월에 세 번 발동됐고 지난 11일에도 발동됐다. 특히 12일 급전지시 대상에 든 기업 대부분은 전날에도 대상에 포함됐다.
연일 계속되는 급전지시에 기업들은 “정부 요구에 응하는 게 너무 힘들다”는 반응을 보였다. 한 중소기업 대표는 “이틀 연속 급전지시가 내려왔다”며 “공장 가동을 또 멈출 수 없어 오늘은 급전지시에 응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기업이 급전지시에 응하지 않으면 전기 사용을 줄이는 대가로 받기로 한 보상금 중 일부를 못 받는다.
또 다른 중소기업 대표는 “최저임금 인상에 근로시간 단축까지 예고된 상황에서 정부가 기업 사정을 고려하지 않고 급전지시를 내리고 있다”며 “아예 공장 문을 닫으란 얘기냐”고 했다.
급전지시는 2014년 제도 도입 후 2016년까지 세 번만 발동됐다. 하지만 작년 5월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뒤 7월에 두 번, 이번 겨울 들어 다섯 번 등 총 일곱 번 발동됐다. 지난해 여름 잇따른 급전지시로 논란이 됐을 때 정부와 여당은 “급전지시는 좋은 제도이기 때문에 더욱 활성화하겠다”고 했다.
정부가 급전지시를 자주 내린 직접적 이유는 계속되는 한파로 전력 사용량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올겨울 전력예비율은 위험수위는 아니지만 10%대 중반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근본적으로는 정부의 잘못된 수요예측이 급전지시가 남발되는 이유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손양훈 인천대 경제학과 교수는 “원자력발전소를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린다는 게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라며 “하지만 신재생발전소는 계획만 있지 언제 얼마만큼 생긴다는 보장이 없다”고 말했다. 손 교수는 “최근 화석연료 가격이 오르고 있고 한파 등으로 전기 사용량도 계속 증가하고 있다”며 “앞으로 전기요금 인상과 수요 조절에 대한 부담이 지금보다 늘면 늘었지 줄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서 2030년 최대 전력수요를 100.5GW로 예상했다. 이는 2015년 내놓은 7차 전력수급계획 예상치보다 12.7GW 낮아진 것이다. 조성봉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난방수요가 급증하는 상황에서 원전이 많이 멈춰서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 원전 24기 중 9기가 예방 정비 등의 이유로 가동을 하지 않고 있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
-
기사 스크랩
-
공유
-
프린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