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동차 공장 시찰하는 김정은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표적 자동차 생산 공장인 평안남도 덕천시의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 자동차 공장 시찰하는 김정은 >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대표적 자동차 생산 공장인 평안남도 덕천시의 ‘승리자동차연합기업소’를 시찰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21일 보도했다. /연합뉴스
미국이 북한을 ‘불량국가’로 낙인찍는 테러지원국 재지정 카드를 빼들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등을 만나고 아시아 순방에서 돌아온 지 엿새 만이고, 시 주석의 대북 특사가 ‘빈손’으로 평양에서 귀국한 직후다.

미국과 북한 간 대화 탐색 분위기가 끝나고 새로운 긴장국면으로 넘어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반면 예정된 수순에 따른 제재일 뿐 기존 대북정책의 변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해석도 있다.

트럼프 “北 살인정권” 비난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면서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는 북한을 ‘살인 정권’이라고 지칭하며 “오늘 이 조치를 하면서 우리는 멋진 젊은이였던 오토 웜비어와 북한의 탄압에 의해 잔인한 일을 겪은 수많은 이들을 생각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수년 전에, 오래전에 (북한을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했어야 했다”고 강조했다.

미국은 북한을 대한항공기 폭파사건 직후인 1988년 1월 테러지원국으로 지정했다. 북한이 영변 핵시설 냉각탑을 폭파하고 핵 검증에 합의하자 2008년 10월 테러지원국에서 제외했다. 그러나 지난 2월 김정은의 이복형 김정남이 말레이시아 공항에서 독살되고, 6월 북한에 억류됐던 웜비어가 귀국 후 사망하자 재지정 카드를 테이블 위에 올렸다.

트럼프 대통령은 또 이날 “미국 재무부가 내일(21일) 매우 거대한 추가 대북제재를 발표할 것”이라며 “(제재는) 2주에 걸쳐 마련되고 2주가 지나면 제재(강도)는 최고 수준이 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미국은 북한이 60일가량 핵 실험과 미사일 시험발사 등 도발을 멈추자 대화 가능성을 탐색해왔다. 테러지원국 재지정과 독자제재 재돌입은 이런 국면을 전환하겠다는 신호로 보는 시각이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5일 아시아 순방 성과를 설명하는 자리에서 예상과 달리 테러지원국 지정 문제를 언급하지 않았다. 시 주석의 대북특사인 쑹타오 중국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방북을 앞둔 시점이었다. 특사의 방북 결과를 보고 테러지원국 재지정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기대와 달리 쑹 부장은 지난 20일 북핵과 관련해 성과 없이 귀국했다.

틸러슨 “여전히 외교 원해”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행정적 절차에 관한 결정일 뿐 최고의 압박과 관여라는 기본적인 대북정책 노선의 변화는 아니라는 해석도 나온다. 국무부가 테러지원국으로 재지정하지 않으면 의회가 독자적으로 법안을 제출할지 모르는 상황이다. 이 경우 국무부와 백악관이 북핵 문제에서 주도권을 잃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결정을 내렸다는 것이다.

지난 8월 미 의회를 통과한 대북제재 법안은 90일 이내에 국무장관이 북한에 대한 테러지원국 재지정 여부를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결정 시한은 지난 2일로 이미 지났다. 미국 여야 모두 대북제재에 목소리를 높이고 있어 국무부가 떠밀리듯 지정에 나섰을 것이라는 해석이다.

렉스 틸러슨 국무장관은 이날 “우리는 여전히 외교를 희망한다”며 “테러지원국 재지정은 대북 압력을 계속해서 끌어올려 북한을 대화 테이블로 끌어내려는 전략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대화국면용 카드 관측도

전문가들은 테러지원국 재지정이 ‘상징적’ 조치라는 데 공감하고 있다. 재지정에 따라 북한은 무기 관련 수출 금지와 국제 경제원조 수령 금지, 금융 및 기타 분야 제재를 받는다. 하지만 북한이 이미 국제적으로 고립돼 있기 때문에 제재 실효성은 떨어진다는 분석이 많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트럼프 대통령이 또 하나의 상징적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이번 재지정은 북한의 범죄 행위를 부각하는 동시에 김정은 정권의 고립을 강화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대니얼 러셀 전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지금 시점에서 테러지원국 카드를 빼드는 것이 전혀 상상 불가능한 조치는 아니다”며 “미국은 나중에 북한과의 협상 과정에서 테러지원국 해제를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김채연 기자 ps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