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직원들이 세계 1위를 뜻하는 풍선을 들고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TV와 함께 서 있다. 삼성전자 제공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직원들이 세계 1위를 뜻하는 풍선을 들고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TV와 함께 서 있다. 삼성전자 제공
2000년 미국 백화점 체인 시어스의 시카고 본사. 삼성전자 직원 몇 명이 50㎏이 넘는 32인치 TV를 들고 자동차에서 내렸다. 이들은 바로 정문으로 진격했다. 경비원이 가로막자 “이 TV는 품질이 아주 우수하다. 담당자를 한 번만 만나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낑낑거리며 TV를 들고 있는 모습이 안쓰러웠는지 시어스의 TV 판매 담당자는 제품을 갖고 올라와 보라고 했다. TV를 살펴보던 담당자는 “과거 한국 제품들과는 다르다”며 관심을 보였다. 삼성전자 직원들은 “기존 제품보다 훨씬 저렴하다. 품질과 애프터서비스 등 무엇 하나 뒤지지 않는다”고 매달렸다. 잠시 고민하던 담당자는 “한번 전시나 해보자”고 했다. 삼성전자 TV가 처음 시어스의 문을 열던 순간이다.

이처럼 힘겹게 시장을 조금씩 개척해 가던 삼성전자는 2006년 소니 등 일본 전자업체를 꺾고 세계 시장 점유율 1위에 올랐다. 삼성전자는 올해까지 12년째 세계 TV 1위의 왕좌를 지키고 있다.

삼성전자 TV의 ‘세계 최초’ 역사

삼성전자는 지난 3분기에 반도체에서만 10조원을 벌어들였지만 세계 시장을 처음 제패한 제품은 TV다. TV 사업을 담당하는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는 삼성전자 내에서도 남다른 자부심을 갖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프리미엄 TV에서 삼성전자는 확고한 우위를 유지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 GFK와 NPD의 조사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1500달러 이상 TV 시장에서 45.9%의 압도적인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다. 2500달러 이상 시장에서도 37.8%를 점유하고 있다. 시장조사업체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타나기도 하지만 소비자가 직접 매장에서 구입한 제품과 가격을 기준으로 시장 점유율을 산출하는 GFK와 NPD의 조사가 전자업계에서는 가장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이 같은 세계 1위의 비결은 남다른 기술력에 있다. 2004년엔 당시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크기인 46인치 LCD(액정표시장치) TV를 출시한 데 이어 2009년에는 세계에서 가장 얇은 29.9㎜ 두께의 TV를 내놔 관심을 끌었다. LED(발광다이오드)를 LCD TV에 처음 적용한 것도 삼성전자다. 2014년에는 휘어진 커브드 TV를 세계 최초로 선보였다. 2000년 이후 브라운관 TV가 LCD TV로 대체되기 시작한 뒤 TV 기술 혁신의 순간에는 언제나 삼성전자가 있었다.

프리미엄 전략으로 독주

삼성전자는 TV 시장의 우위를 유지하기 위해 프리미엄 전략을 펴고 있다. 세계 TV 시장의 성장세가 사실상 멈춘 가운데 부가가치가 높은 프리미엄 TV를 중심으로 수익률을 높인다는 것이다. 그 전략의 중심에 있는 것이 QLED(양자점발광다이오드) TV다. 압도적인 화질은 물론 리모컨, TV 연결 케이블까지 하나하나 세심한 손길을 기울였다. ‘새로운 TV가 아닌 새로운 시대의 시작’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것도 이처럼 TV 구성 요소 하나하나를 모두 바꿨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QLED TV와 함께 ‘스크린 에브리웨어(screen everywhere)’라는 비전도 내놨다. TV가 꺼져 있는 시간에도 스크린으로서 TV가 가치를 발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표다. QLED TV는 TV 방송사가 제작하는 콘텐츠 이외에 음악과 동영상 등을 쉽게 이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이 아니라 TV의 대화면으로 언제든 손쉽게 콘텐츠를 즐길 수 있다.

실내 공간 어디에 놓더라도 TV가 자연스럽게 조화될 수 있어야 한다는 점도 중요한 문제의식이었다. 이 같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삼성전자 연구원들은 3년간의 노력 끝에 TV와 연결된 각종 케이블을 지름 1.8㎜의 투명 광케이블에 통합해 QLED TV에 적용했다.

최근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에는 변화가 있었다. 2012년부터 사업부를 이끌어온 김현석 사장이 소비자가전(CE) 부문 대표로 올라가고 한종희 사장이 사업부를 이끌게 됐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한 사장 역시 세계 시장 1위 유지와 프리미엄 시장 공략이라는 두 가지 목표 달성에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