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씁쓸한 서울대의 '친일 교수' 논란
“문제 교수의 재임용은 규장각의 정체성을 부정하는 것이다.”

오수창 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는 이달 초 대자보에서 성낙인 총장의 퇴진을 요구하며 이같이 주장했다. 오 교수는 인문대 측 반대를 무릅쓰고 본부가 특정인을 교수로 재임용한 사실을 문제삼았다. 그는 “(성 총장이) 무엇을 근거로 인문대의 재임용 불가 의견을 뒤집었느냐”며 “그의 연구 성과는 결격이며 그 내용은 규장각의 정체성을 부정하고 있다”고 반발했다.

논란의 주인공은 김시덕 규장각 한국학연구원 교수다. 한·일 교류사를 연구하는 그는 30년 전통과 권위의 ‘일본고전문학학술상’을 외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이 “한반도 미래 전략을 위한 필독서”라고 극찬한 《동아시아 해양과 대륙이 맞서다》의 저자다. 국내 역사학계에서 보기드문 스타 교수가 졸지에 ‘재임용 결격자’가 된 사정은 무엇일까. 11일 서울대에 따르면 김 교수는 지난 4년간 연구 실적이 600%(주저자 논문 1개당 100%)로 재임용 기준(400%)을 초과 달성했다. 질적 평가에서도 논문 6개 가운데 5개가 ‘우’, 1개가 ‘미’ 판정을 받아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앞서 인문대 인사위원회는 올해 초 심사에서 6개 중 3개에 ‘미’를 줬다. 같은 논문을 놓고 심사위원 평가가 ‘수’에서 ‘가’까지 극명하게 엇갈렸다. 본부 측은 “객관성을 결여했다”며 재심사를 요청했고 그 결과 ‘우’가 3개에서 5개로 늘었다.

이번 사건은 서울대 특유의 순혈주의와 배타성을 고스란히 노출했다는 지적이다.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은 강한 민족주의 성향의 서울대 국사학과가 주도하고 있다. 김 교수는 고려대 일어일문학과 출신으로 일본 국립 국문학연구자료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3년 서울대에 임용됐지만 철저한 ‘외부자’였다는 게 주변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인문대 A교수는 “내부적으로 언론 기고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 대외 활동을 활발히 펼쳐온 김 교수를 고깝게 보는 시각도 있었다”고 했다. 국내 최고 대학을 자부하는 서울대가 이번 논란을 학내 다양성을 한 단계 높이는 계기로 만들어 주길 기대해본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