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대규모 정전… '탈원전 뒤탈'
탈(脫)원전을 선언한 대만에서 지난 15일 블랙아웃(대규모 정전)이 발생해 전체 가구 3분의 2에 전력 공급이 끊겼다. 리스광 경제부 장관은 책임을 지고 사의를 밝혔다.

16일 외신에 따르면 이번 사태는 15일 오후 4시51분 대만 북서부 타오위안의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 6기가 멈춘 데서 비롯됐다. 국영석유회사인 CPC 직원이 실수로 가스 밸브를 2분간 잠근 게 원인이었다. 전체의 64%인 828만 가구가 정전 사태를 겪었고 다섯 시간이 지난 오후 9시40분께 복구가 완료됐다.

그동안 신호등이 고장나 도심 교통이 마비됐고, 730여 명이 엘리베이터에 갇히는 등 피해가 잇따랐다. 6기의 LNG발전소가 멈추며 끊긴 전력은 4GW다. 대만은 원전 6기 중 3기의 가동을 멈췄고, 공정률이 98%인 원전 2기의 공사도 중단했다. 주한규 서울대 원자핵공학과 교수는 “대만은 탈원전으로 4~5GW의 기저발전(24시간 가동되는 발전)이 빠져나간 상태”라고 말했다.

대만은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롤모델 국가다. 청와대와 여당은 탈원전에 대한 비판 여론이 제기될 때마다 “대만도 하는데 우리가 왜 못하냐”고 반박해왔다. 더불어민주당 정책위원회 부의장인 이훈 의원이 지난 15일 언론 인터뷰에서 “(제조업이 발달한) 대만도 탈원전을 선언했다”고 말한 게 대표적이다.

대만은 작년 5월 차이잉원 총통(대통령) 취임 이후 아시아 국가 중 최초로 탈원전 정책을 시행했다. 원전 6기 중 5기의 가동을 멈췄다.

차이 총통은 지난해 기준 4.8%인 신재생에너지 비중을 2025년까지 20%로, 액화천연가스(LNG) 비중은 같은 기간 32%에서 50%로 확대하겠다고 공약했다. 지난 5월 취임한 문재인 대통령이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와 LNG 비중을 각각 20%와 37%로 높이겠다고 한 것도 대만 사례를 참고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대만의 전력 사정은 탈원전 이후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전력 예비율(공급 예비율)이 1.7%까지 떨어졌다. 지난달 31일에는 태풍으로 송전탑이 넘어진 것만으로도 65만 가구가 정전사태를 겪었다. 외신은 15일 블랙아웃을 “1999년 대만 대지진 이후 가장 심각한 정전 사태”라고 했다.

대만 정부는 올여름 들어 전력 부족 사태가 계속되자 가동을 중단했던 원전 중 2기를 재가동했다. 그럼에도 전력 사정이 나아지지 않자 정부는 타이베이 시내 건물의 에어컨을 강제로 끄게 했고, 이런 조치가 국민의 반발을 불러오고 있다고 외신은 전했다.

대만 정부가 운영하는 국민참여 홈페이지에는 지난 8일 “원전 일부를 추가로 재가동하고, 공정률이 98%인 상태에서 공사를 중단한 2기 원전도 시운전을 시작하자”는 청원이 올라왔다. 이 제안에 찬성하는 사람은 사흘 만에 5200명을 넘었다. 찬성자가 5000명이 넘으면 정부는 2개월 안에 이 제안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 차이 총통은 블랙아웃 사태 직후 페이스북에 “정책 방향은 변하지 않을 것이며 이번 사고가 우리의 결심을 더욱 굳건하게 할 것”이라고 썼다.

이태훈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