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티브 잡스는 애플에서 쫓겨난 뒤 애니메이션 제작사인 픽사를 인수했다. 픽사가 1990년대 말 새로운 본사 건물을 지으려 할 때 잡스는 새 건물에 세세하게 관여했다. 그는 회사 건물은 직원들이 항상 자연스럽게 마주칠 수 있는 구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고민 끝에 건물 전체에 남녀 화장실을 한 개씩만 지으라고 지시했다. 누구나 휴게실을 가지 않더라도 화장실엔 언젠가 한 번은 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지시는 화장실이 멀어서 불편하다는 직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결국 남녀 화장실을 두 개씩 설치하는 것으로 타협했다. 건물이 완공된 뒤 잡스의 구상은 첫날부터 효과를 발휘했다. 몇 달 동안 못 만난 사람들이 끊임없이 마주쳤다. 우연한 만남을 통해 자연스러운 협력이 촉진됐다. 직원들은 누군가를 우연히 만나 일의 진행 상황을 묻다 보면 온갖 다른 아이디어를 떠올릴 수 있었다.

[책마을] '창의적 아이디어' 원한다면…멍때려라
우리 뇌가 독창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려면 기존 관습에서 벗어나 새로운 경험과 도전을 할 필요가 있다. 독일 심리학자이자 언론인인 바스 카스트는 《조금 다르게 생각했을 뿐인데》에서 창의성을 키우는 환경과 교육 방법을 전한다. 실험실에서 밝혀진 연구 결과들과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찰스 다윈, 스티브 잡스 등 창의적인 삶을 산 인물들을 통해 창의성에 대한 궁금증을 파헤친다.

저자는 먼저 창의력은 누구나 지닌 기본 자질이라고 말한다. 그는 창의력을 몸무게에 비유한다. 다른 사람보다 몇㎏ 더 나가거나 덜 나가는 사람은 있지만 몸무게가 없는 사람은 없다는 것. 몸무게는 불변하는 것도 아니다.

저자는 여러 실험 사례를 보여주며 창의적인 아이디어는 집중하는 순간보다는 긴장을 풀고 정신적으로 여유를 갖는 순간에 많이 생겨난다는 것을 밝힌다. 뇌가 일에서 풀려나 활동을 멈춘 ‘오프라인’ 상태가 되면 상상력과 관련된 영역이 활성화된다. 세계 출판 역사상 유례없는 성공을 거둔 《해리 포터》 시리즈는 작가인 조앤 K 롤링이 열차에서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는 동안 떠올린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롤링은 단조로운 시골 풍경을 바라보는 동안 갑자기 동그란 안경을 낀 소년의 모습과 마법학교의 장면들이 물밀 듯 밀려들었다고 표현했다.

저자는 좋은 아이디어는 다양한 인간관계에서 나온다고 전한다. 잡스가 픽사 건물을 구상할 때 고려했던 것처럼 다양한 사람과의 활발한 교류를 통해 창의력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저자는 자신의 주장을 고집하지 않고 타인의 의견을 경청하는 구성원이 많아질수록 집단의 지능지수(IQ)가 높아진다고 실험을 통해 알려준다. 반대로 자기과시가 심한 사람이 대화를 일방적으로 이끌며 주도하는 집단에서는 집단 IQ가 낮게 나왔다.

저자는 아이의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탐구정신을 일깨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 세상에 대한 지속적인 호기심과 탐구정신을 갖게 된다. 그러나 지식을 축적할수록 불타는 호기심은 사그라지고 더 이상 순진한 질문은 하지 않게 된다.

저자는 탐구정신을 일깨우려면 ‘교육을 적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대부분 부모는 아이가 질문할 때 곧바로 답을 알려주는 경향이 있다. 학교에서는 아이들의 질문이 나오기 전에 이미 답을 알려주고 주입시킨다. 저자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스스로 지식과 답을 찾는 교육을 받은 학생들이 더 창의적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답을 알려주지 말고 알아내게 하라는 얘기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