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압박에 두손 든 애플…'공장 없는 비즈니스 모델' 포기하나
애플 아이폰에는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캘리포니아의 애플이 디자인하고 중국에서 조립하다)”란 문구가 적혀 있다. 2007년 첫 아이폰이 출시된 이후 변하지 않은 문구다.

애플은 그동안 부품 공급의 용이성, 저임금 노동력을 쉽게 구할 수 있는 장점 등을 들어 해외 생산을 고집해 왔다. 하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으로 인해 이 원칙은 무너지게 됐다. 이는 필연적으로 조립, 물류비 상승을 불러 아이폰 값 인상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다.

◆정부 압박에 무릎 꿇어

애플은 트럼프 행정부 등장 후 세 가지 어려움을 겪었다. 반이민 정책으로 기술 인력 확보가 힘들어졌으며, 해외유보금 2570억달러(약 287조9600억원)를 미국으로 들여와 쓰라는 압력을 받았다. 가장 큰 압력은 미국에 생산공장을 세우라는 것이다. 지난해 대선 캠페인 때 “애플 공장을 미국에 유치하겠다”고 공약한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기업이 미국 내에서 생산하지 않으면 국경조정세 등을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애플도 이런 요구를 들어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세금에 대한 두려움뿐 아니라 기업 인수합병(M&A) 과정에서의 반독점심사 등 트럼프 정부의 협력이 필수적이어서다. 여론도 트럼프 편이다. 애플은 “미국에서 8만 명의 직원을 고용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월스트리트저널은 이들 대부분이 소매점에서 일하는 직원이라고 보도했다.

◆무슨 공장 세우나

애플은 아이폰 아이패드 등 완제품을 조립하는 공장, 디스플레이 등을 생산하는 부품 공장, 대규모 데이터센터 설립 등을 추진하고 있다.

우선 애플의 가장 큰 하청 조립업체인 대만 폭스콘은 위스콘신주(州)에 100억달러 투자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디스플레이 공장 건설에 70억달러, 그 외 제조 거점 구축에 30억달러 등을 투입한다는 구상이다. 위스콘신은 미 중서부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도시)에 속한 곳으로 트럼프 대통령을 지지하는 지역이다.

애플의 또 다른 하청 제조업체인 대만 페가트론의 랴오츠정 대표도 미국에 공장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랴오 회장은 지난 3월 “고객사가 제품 판매가에 (미국 생산에 따른) 비용을 반영해 준다면 미국 생산도 괜찮다”며 “고객사가 미국이든 중국이든, 수요가 있는 곳에 생산라인을 구축할 것”이라고 말했다.

애플은 올해 미국 내 첨단 제조업 육성을 위해 10억달러 규모의 펀드를 조성했으며, 이 중 2억달러를 디스플레이 유리를 생산하는 코닝에 투자하기로 했다. 애리조나주에 대규모 데이터센터를 설립하는 계획도 추진 중이다.

◆아이폰 값 최소 5% 오를 듯

애플은 해외 생산에서 많은 이점을 누려 왔다. 아시아에는 부품업체가 많고, 조립을 위한 인건비가 저렴해 원가 절감에 큰 도움이 됐다. 상황에 따라 신속하게 생산 규모를 확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애플이 미국에 공장을 세우면 효율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미국 근로자들은 임금이 높고 노동 집약적 산업에 취약하다. 이에 따라 아이폰 가격이 상승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작년 6월 발행된 MIT테크놀로지리뷰에 따르면 아이폰6S(부품값 230달러, 조립 비용 4~10달러)를 미국에서 조립하면 비용이 30~40달러 높아져 판매가가 5%가량 오르는 것으로 추정됐다. 미국 노동자 임금이 높아서다. 모든 부품을 미국에서 생산하면 부품값이 30~40달러 높아져 최종 판매가는 100달러 이상 오를 것으로 관측됐다. 대부분의 부품사가 한국 일본 중국 등에 있어 물류 비용 등이 추가돼서다.

애플이 트럼프에게 두 손을 들면서 삼성전자 LG전자 등 미국에서 스마트폰을 판매하는 해외 업체도 직간접적인 압력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아이폰의 평균판매단가(ASP)는 500~600달러에 달하는 데 비해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ASP는 200달러 전후여서 마진 압박이 더 클 수 있다. 애플에 많은 부품을 납품해온 삼성SDI LG화학 LG디스플레이 등도 애플의 원가 인하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있다.

뉴욕=김현석 특파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