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과장&이대리] 블로그에 담은 응급실 이야기…"3분 진료 안타까워"
최석재 뉴고려병원 응급의학과장(36·사진)은 직함이 많은 의사다. 일터인 병원에서는 과장님, 선생님으로 불린다. 바쁜 응급실 생활이 끝난 뒤 병원 밖을 나서면 칼럼니스트, 뉴스펀딩 제작자, 요셉의원 의료봉사자 등으로 통한다. 최근에는 ‘아는 의사’라는 별칭도 얻었다. 10여 년간 응급실 생활을 엮은 《응급실에 아는 의사가 생겼다》는 책을 내면서부터다. 최 과장은 “1년에 9만 명에 가까운 환자가 스쳐 지나간다”며 “환자를 보며 가슴 아픈 일이 많았다”고 했다. 그는 “기억을 담아두자는 생각에 블로그를 시작했고 그동안의 블로그 글을 모아 책으로 낸 것”이라고 했다.

그는 응급의학과 레지던트 2년차던 2008년 블로그를 시작했다. 크리스마스에 열성경련으로 응급실에 실려온 남자아이, 교통사고로 사망에 이른 남성 환자 이야기 등을 일기 쓰듯 담담히 적었다. 2015년 포털사이트 다음에 스토리펀딩을 연재하면서 개인 블로그가 소통의 창구로 바뀌었다. ‘이 산모 꼭 살리고 싶었다’는 글로 시작해 석 달 동안 10편을 연재했다. 응급의료 시스템 때문에 사망할 수밖에 없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솔직히 실었다. 환자 사연과 함께 응급실 이용 방법도 담았다. 반응은 좋았다. 후원금만 258만원이 모였다. 일부를 국제 의사봉사단체인 ‘국경없는 의사회’와 영등포 쪽방촌 및 노숙인을 위한 무료 진료소 ‘요셉의원’에 기탁했다.

최 과장은 2010년부터 요셉의원에서 의료봉사를 하고 있다. 이곳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깨달았다. 바쁜 응급실과 달리 환자와 긴 시간 이야기할 수 있다. 그는 “당뇨 고혈압 환자 등을 주로 보는데 고마움을 표하는 환자와 소통하며 스스로 ‘잘살고 있구나’라는 위안을 얻는다”고 했다.

그가 일하는 응급실은 환자에게도, 의사에게도 불편한 공간이다. 늦은 시간 문 연 병원이 없어 증상이 가벼운 경증환자도 응급실로 몰린다. 중증환자와 경증환자가 섞여 있다 보니 환자들은 진료가 늦어진다고 아우성이다. 그의 꿈은 이 같은 환자들이 불편함 없이 치료받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다.

“만성복통으로 응급실을 찾은 한 할머니를 치료할 때였어요. 저를 붙잡고 그동안 왜 여러 병원을 전전긍긍해야 했는지 30분 동안 이야기하셨죠. ‘3분 진료’를 하고 싶은 의사도, 받고 싶은 환자도 없을 거예요. 잘못된 시스템의 피해자인 거죠. 블로그와 책을 통한 소통으로 이를 바꾸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이지현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