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이 지난 15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확정됐다고 발표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어수봉 최저임금위원장이 지난 15일 내년도 최저임금이 시간당 7530원으로 확정됐다고 발표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기준선을 정해놓고 최저임금위원회 위원들을 꼭두각시로 만들었다. 일종의 사기행위다.”(김대준 사용자 위원·한국컴퓨터판매업협동조합 이사장)

내년도 최저임금이 결정된 절차와 방식에 대해 뒷말이 무성하다. 노동계와 경영계, 공익위원 9명씩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는 노사 합의와 자율성을 기반으로 운영된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으로 인상’이라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따라 올해 인상 기준선(인상률 15.7%)을 제시하고 이에 맞추도록 압박했다는 게 위원회 참석자들 얘기다.

경매 낙찰 방식으로 최저임금 결정

정부, 기준 정해놓고 밀어붙이기…소상공인 "사기당한 기분"
지난 15일 오후 8시30분 정부세종청사 4층 회의실. 공익위원들은 노·사 위원실을 찾아와 최종 인상안을 제출하라고 통보했다. 이날 오후 3시30분부터 논의가 이어졌지만 노동계가 3차 인상안으로 8330원(인상률 28.7%), 경영계가 6740원(4.2%)을 내놓은 뒤 답보 상태였다. 노사 의견차는 여전히 컸고, 토론은 30분도 채 이뤄지지 않았다.

정부를 대표하는 공익위원들은 노사 양측이 서로 알 수 없도록 ‘비공개 범위’를 제시했다. 노동계에는 상한선으로 7000원대 후반, 경영계에는 하한선으로 6000원대 후반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정부 측이 의도한 인상률에 맞춰 가이드라인을 내놓은 것이다. 그러면서 각 측이 제출한 최종 수정안을 놓고 표결에 부쳐 확정하겠다고 압박했다.

그동안 노사가 의견차를 좁히지 못하면 공익위원이 ‘최후 수단’으로 중재안을 내놓은 적은 많았다. 하지만 중재안을 내놓을 때는 성장률, 노동분배율, 생산성 등에 대한 수치도 함께 제공됐다. 이번엔 비공개 범위를 제시하면서 노사 양측에 왜 그렇게 범위를 설정했는지 설명하지 않았다.

논의 시간 없이 표결부터

노사 양측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제대로 된 논의 없이 각자 안을 두고 표결하자는 건 ‘캐스팅보트’인 공익위원이 최저임금을 정하겠다는 얘기였다.

밤 12시가 가까워오자 시간에 쫓긴 양측은 최종 양보안을 내놓을 수밖에 없었다. 사용자 측 한 위원은 “사실상 정부가 원하는 인상률 15% 선에 맞추라는 압박이 이어졌고 이를 벗어나면 표결에서 제외될 것이란 우려가 컸다”고 말했다.

노동계에서조차 “당초부터 대통령 공약 달성을 위한 인상률인 15.7%에 더 가깝게 써낸 쪽의 손을 들어주는 경매 낙찰 방식이었다”(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는 얘기가 나왔다.

이런 압박에 사용자 측은 3차 수정안보다 훨씬 높은 7300원(인상률 12.8%)을 제시했고, 근로자 측은 16.4% 인상한 7530원을 요구안으로 내놨다.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표결에 들어갔다. 노동계 안이 근로자 위원 9명과 공익위원 6명의 지지를 받아 15표를 얻으면서 내년도 최저임금은 7530원으로 결정됐다. 한 근로자 위원은 역대 최고 수준(인상액 기준) 인상에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어수봉 위원장은 “어려운 상황에서도 대승적 결단을 내려준 노사에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