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를 잠정 중단하고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시민배심원단을 통해 영구 중단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인 에너지 정책의 운명을 전문가를 배제한 채 여론에 맡기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부는 27일 문재인 대통령 주재로 열린 국무회의에서 신고리 5·6호기 문제와 관련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고 일정 규모의 시민배심원단에 의한 ‘공론조사’ 방식을 추진하는 것을 의결했다고 발표했다. 홍남기 국무조정실장은 브리핑에서 “위원회는 결정권이 없고 단지 공론화를 설계하고 아젠다를 세우며 국민과의 소통을 촉진하는 역할을 한다”며 “공론화 기간에 신고리 5·6호기 공사는 일시 중단하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국민적 신뢰가 높고 중립적인 인사를 중심으로 열 명 이내의 공론화위를 구성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공론화 종료 시까지 3개월 동안 한시 운영된다. 공론화위에서 여론조사와 TV토론회 등 공론조사 방식 등을 마련한다. 공론화위는 최종 결정을 내릴 시민배심원단을 구성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때 ‘탈(脫)원전’ 공약으로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 중단을 내세웠다. 하지만 새 정부 출범 후 지역주민 반발과 전문가 반대에 부딪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쪽으로 한발 물러섰다.

정부는 신고리 원전 5·6호기 영구 중단 여부를 결정하는 공론조사 방식과 관련해 일체의 기준과 내용 등을 공론화위원회에서 결정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이해관계자나 에너지 분야 관계자가 아닌 사람 중 국민적 신뢰가 높은, 중립적인 인사를 중심으로 10인 이내로 선정된다. 남녀를 균형있게 배치하고 한두 명은 20~30대 젊은 인사로 선임할 것이라고 국무조정실은 설명했다.

국무조정실은 비슷한 해외 사례도 소개했다. 독일이 올해 ‘핵폐기장 부지 선정 시민소통위원회’를 구성하고 일본이 2012년 ‘에너지 환경의 선택에 대한 공론조사’를 한 전례가 있다는 것이다. 독일은 불특정 국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 겸 여론조사를 먼저 한 뒤 시민배심원이 TV토론회 등을 거쳐 정책을 최종 결정한다.

정부가 공론화위원회는 결정권이 없다고 밝혔지만 참고로 내세운 독일 사례에 비춰볼 때 결국 결정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시민 배심원단이 도출해낸 공론을 뒤늦게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기는 현실적으로 어려울 것이란 이유에서다.

전문가 사이에서는 신고리 5·6호기 건설 중단의 법적 근거도 없을 뿐 아니라 최종 결정을 비전문가 손에 맡기는 것은 무책임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정범진 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발전소 건설은 5년 이상 걸리기 때문에 한 번 정책이 잘못 집행되면 최소 5년 동안 전력 수급에 차질이 빚어질 위험이 있다”며 “이런 중차대한 사안을 일반 시민의 판단에 맡긴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신고리 5·6호기는 지난 5월 말 기준 종합공정률이 28.8%다. 정부는 공사를 영구 중단할 경우 총 2조6000억원의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임도원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