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쌈짓돈' 고용보험기금…일자리 사업 동원 논란
정부가 청년구직촉진수당, ‘2+1 제도’ 등 문재인 대통령의 주요 일자리 공약 사항을 고용보험 사업으로 편성했다. 올해엔 추가경정예산으로 필요한 돈을 충당하기로 했지만 내년부터는 사업비 대부분이 고용보험기금에서 지출되는 구조다. 전문가들은 고용보험기금이 실업급여 등으로 용처가 제한돼 있는데, 정부가 추진하는 사업에 ‘쌈짓돈’처럼 쓰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한다. 2020년 적자를 앞둔 고용보험기금의 재정 건전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고용보험기금 ‘쌈짓돈’ 신세

6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올해 고용부 추경예산 4167억원 중 2202억원은 고용보험 사업에 포함됐다. 청년취업지원 사업인 ‘2+1 제도’에 849억원, 청년구직촉진수당 등에 1350억원이 할당됐다. ‘2+1 제도’는 중소기업이 청년 두 명을 채용한 뒤 한 명을 더 뽑으면 세 번째 채용된 청년의 임금(최대 연 2000만원)을 3년간 지원하는 사업이다. 청년구직촉진수당은 취업준비생에게 월 30만원씩 3개월간 주는 것으로, 시범 사업에만 연 1000억원 이상이 들어간다.

청년 일자리 공약들이 고용보험 사업에 대거 포함되면서 기금 목적과 동떨어진다는 비판도 나온다. 정부가 져야 할 재정 부담을 근로자와 사용자에 떠넘겼다는 지적이다. 고용보험기금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매달 급여의 0.65%씩을 내서 마련한다. 근로자가 직장을 잃었을 때 실업급여, 재교육비 등을 지원해 주는 게 목적이다.

정부가 기금을 활용해 보조금 형태로 주는 ‘고용안정 및 직업능력개발 사업비’는 매년 급증세다. 작년 사업비 지출은 3조77억원으로, 2012년(1조6007억원)보다 87.9%가량 늘었다. 익명을 요구한 노동 분야 교수는 “정부는 고용보험의 고유한 사업 영역과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야 하는 재정사업을 명확히 구분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쌈짓돈처럼 고용보험기금을 사용하고 있다”며 “‘2+1 제도’와 청년구직촉진수당은 보험료를 낸 사람과 혜택을 받는 사람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도 큰 문제”라고 지적했다.

◆육아휴직수당, 대책 없이 두 배로

육아휴직급여 두 배 인상도 논란거리다. 정부는 이번 추경예산에 모성보호 육아지원금 517억원을 편성했다. 육아휴직 사용률을 높이기 위해 첫 3개월간 육아휴직급여를 통상임금의 40%에서 80%로 인상하는 내용이다. 상한액도 월 100만원에서 150만원으로 늘렸다.

출산 전후 휴가급여와 육아휴직급여 등 모성보호 비용도 고용보험 사업이다. 2002년 고용보험 사업에 포함될 당시부터 고용보험의 목적과 불합치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당시 257억원이었던 비용은 지난해 9297억원으로 급증했다. 올해엔 1조원 이상으로 부담이 늘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 관측이다. 정부가 일반회계 전입금으로 700억원 정도를 주고 있지만 전체 비용의 10분의 1에 미치지 못한다. 결국 사업비 대부분은 직접 상관이 없는 근로자와 사업주가 부담하는 꼴이다.

재계 관계자는 “도입 당시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기금 운용에 여유가 있는 고용보험기금이 한시적으로 모성보호 비용을 부담하더라도 나중에는 일반회계와 건강보험으로 부담을 옮기자고 결의했는데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행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2025년 2조6000억원대 적자인데…

고용보험의 고갈 시기가 앞당겨질 수도 있다는 우려가 커진다. 고용보험의 적립배율(지출 총액 대비 적립금)은 지난해 기준 1.03배로 아슬아슬하게 적자를 피하고 있다. 기획재정부가 지난 3월 발표한 ‘사회보험 중기재정추계’에 따르면 고용보험기금은 2020년 3000억원 적자로 돌아선 뒤 2025년엔 2조6000억원대로 적자가 확대된다.

한 대학교수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실업급여가 급격하게 소진되고 있는 상황에서 현재 고용보험 적립금으로는 대규모 고용 충격에 대비할 수 없다”고 말했다.

심은지 기자 summ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