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전희성 기자 lenny80@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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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6월 영국 언론 텔레그래프는 이탈리아 최대 커피회사 라바짜의 주세페 라바짜 부회장을 인터뷰했다. 자리에는 커피가 준비돼 있었다. 그러나 라바짜 부회장은 정중히 “커피를 마시지 않겠다”고 하고 대신 물을 청했다.

텔레그래프는 뒤늦게 실수를 알아차렸다. 내놓은 커피가 라바짜 브랜드가 아니었던 것이다. 라바짜 부회장의 자존심을 보여주는 일화다. 라바짜 부회장은 1895년 이 회사를 창업한 루이지 라바짜의 4대손이다. 라바짜 가문은 전문경영인을 두되 경영권은 절대 다른 이에게 넘기지 않는 식으로 이 회사를 세계 3대 커피회사로 키워냈다.

창업자의 4대손…M&A 적극적

창업자 루이지 라바짜는 진취적이지만 가난한 농부였다. 흉작을 경험한 그는 단돈 50리라를 빌려 이탈리아 북부 토리노 인근으로 이주해 한 가게 점원으로 취직했다. 승진을 해 관리자까지 올랐다. 그리고 가게 뒤편에서 화학 실험을 했다. 1910년 그는 커피에 흥미를 갖게 됐다. 다양한 커피 제조를 시도했다. 경쟁자들이 브라질 등의 커피를 단순 수입해서 판매한 것과 달리 여러 원두를 섞어 최상의 조합을 찾는 ‘블렌딩 커피’를 선보였고 크게 히트를 쳤다.

루이지 라바짜는 식료품점의 ‘돈 버는 부업’ 정도로 커피를 팔았지만 그의 아들들의 생각은 달랐다. 커피에 집중하기로 하고 국자로 퍼서 담아주던 업계 관행과 달리 패키지에 브랜드를 박아서 판매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라바짜 부회장이 어딜 가든 즐겨 하는 창업 스토리다. 그는 이 흥미로운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 역시 ‘변화를 통해 회사를 더 키우는’ 스토리를 이어갈 사람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라바짜 부회장은 1991년 경영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 현재의 부회장(이사회 부의장) 자리를 맡고 있다. 전문경영인이 있지만 실질적인 회사의 리더다. 언론 인터뷰나 강연 등 대외 활동도 활발하다.

연 200억 컵 팔지만…“아직도 목마르다”

라바짜 부회장은 자신의 대에서 회사의 위상을 높이기를 바라고 있다. 그가 경영권을 쥐게 된 후 이 회사는 상당히 ‘공격적인’ 인수합병(M&A)을 이어가는 중이다. 과점화된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라바짜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브랜드지만 시장점유율은 생각보다 높지 않다. 약 3% 수준이다. 1위 스위스 네슬레, 2위 JAB홀딩스에 비하면 한참 처진다. JAB는 커피 분야에선 생소한 이름인데, 독일 거부 라이만 일가의 재산을 굴리는 투자회사로 최근 수년 새 큐리그 그린 마운틴, 제이컵스 더위 에그버츠, 카리부 커피 등 커피 브랜드를 인수하며 몸집을 불리고 있다.

라바짜 부회장이 2011년 새 최고경영자(CEO)로 안토니오 바라발레를 영입한 것은 이를 위한 포석이다. 자동차 회사 피아트와 주류회사 디아지오의 CEO로 일했던 바라발레는 회사에 적지 않은 변화를 가져왔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바라발레를 영입한 뒤 이 회사의 해외 매출 비중이 30%에서 지난해 60%로 껑충 뛰었다고 전했다.

라바짜는 지난해 프랑스 최대 소매 커피 브랜드인 ‘카르트 느와르’를 사들였다. 이로 인해 지난해 그룹 전체 매출 규모는 전년보다 29% 뛰어오른 19억유로를 기록했다. 영업이익은 6170만유로로 34% 늘어났다.

추가 M&A를 하겠다는 의욕도 강하다. 라바짜는 순현금으로 7억유로를 보유하고 있고 15억유로를 조달할 여력이 있다. 언제든 20억유로 규모 M&A를 할 수 있다고 회사는 밝히고 있다. 2020년까지 회사 매출 22억유로를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라바짜는 한 해 200억 컵 분량의 커피를 팔아치우고 있지만 라바짜 부회장의 야심은 그보다 몇 배 이상의 커피를 파는 것이다.

공정무역과 유기농 커피 분야를 차기 M&A 대상으로 꼽는 바라발레 CEO는 FT와의 인터뷰에서 “라바짜 가문이 회사 경영권을 갖는다는 단 하나의 규칙만 지킨다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며 라바짜 부회장의 전적인 신임을 받고 있음을 감추지 않았다.

전통 깨고 프리미엄 인스턴트커피 출시

라바짜 부회장은 진심으로 커피를 사랑하는 인물이다. “커피는 세계의 모든 곳에 있으며 좋은 커피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한다. 얼마나 많은 사랑 이야기가 커피와 함께 시작되는가?” 그의 커피 예찬론은 끝이 없다.

에스프레소 외에 다른 이것저것을 섞은 커피는 좋아하지 않는다. 인스턴트커피도 좋아하지 않는다. 2013년 그는 호주 매체 시드니모닝헤럴드와 인터뷰하며 “인스턴트커피를 믿지 않는다”며 “간편하기는 하지만 진짜 급할 때나 먹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흐름을 거부할 정도로 고집을 부리지는 않는다. 라바짜는 지난해 프리미엄 인스턴트 브랜드 ‘프론티시모’를 내놨다. 라바짜의 전통을 깬 것이다. M&A 효과를 제외하고 봤을 때 지난해 프론티시모 출시로 인한 매출 상승 효과는 4%에 달했다. 그는 이런 결정과 관련해 “우리 가문 사람들이 검증한 커피”라며 다른 인스턴트커피와는 다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라바짜 부회장은 동시에 프리미엄 수제 커피 등 마니아를 위한 고급 커피 시장이 커지고 있는 것도 흥미롭게 보고 있다. 경쟁자의 출현으로 여길 수 있지만 그에게는 긍정적인 변화다. “그런 흐름은 새로운 기회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커피 애호가와 커피 전문가를 늘린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하다”고 그는 말했다.

그러나 스타벅스에 대해서 만큼은 여전히 부정적이다. 미국 커피숍 브랜드 스타벅스는 최근 커피문화의 본고장 이탈리아 밀라노에 첫 지점을 냈다. 라바짜 부회장은 이와 관련해 “별로 신경 안 쓴다. 스타벅스의 이탈리아 출점도 환영이다”고 했다. 격이 다르다는 투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