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茶) 제조업체 차미소는 지난해 예술인 네 명의 도움을 받아 차세트 신상품을 출시했다. 고풍스러운 느낌이 강하던 포장 디자인을 젊은 감각으로 바꿨다. 회사 관계자는 “예술인들이 차 농장을 직접 돌며 디자인 콘셉트를 잡았고 인터넷으로 홍보까지 해줬다”며 “소비자를 젊은 층으로 확대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예술인 파견지원 사업’이 기업 제품 개발, 이미지 개선 등에 실질적 도움을 주는 사례가 늘고 있다. 올해 4회째를 맞는 이 사업은 공모로 뽑힌 예술인이 기업이나 기관(재단 등)에 파견 나가 경영 활동, 조직문화 개선 등에 필요한 지원을 해주는 것이다. 농협은행 등 주최 측은 참여 예술인에게 월 120만원의 활동비를 주고 기업은 프로그램 진행 비용을 댄다.

화장품업체 더페이스샵은 지난해 파견 예술인 5명과 함께 화장품 병을 화분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 상품을 개발했다. 환경보호까지 생각하는 ‘자연주의 상품’을 만들자는 기획이었다. 예술인들은 물을 증발시키는 원예용 흙인 디오쏘일을 화장품 병 안에 넣어 밑에 구멍이 없어도 화분으로 쓸 수 있게 했다.

기업 이미지 개선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지난해 예술인 4명이 파견 나와 크리스마스캐럴 3곡을 제작해 음원을 무료로 배포했다. 저작권 단속 강화로 길거리 등 공공장소에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내기 힘들어진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였다. 이 캐럴은 지난해 말 지하철 역사 등에서 울려퍼졌다.

조직 관리에 도움을 받은 기업도 있다. 한화생명은 지난해 서울콜센터 직원 170명을 대상으로 예술활동 프로그램 ‘해피아트콜’을 시행했다. 콜센터 직원은 파견 예술인 12명과 함께 자화상 그리기, 뮤지컬·힙합댄스 공연 연습 등을 했다. 김향미 한화생명 홍보실 과장은 “콜센터 직원들의 스트레스가 많이 풀렸고 애사심도 깊어졌다는 반응”이라고 말했다.

예술인 입장에서는 활동비뿐만 아니라 예술활동에 새로운 자극을 받기도 한다. 지난해 사업에 참여한 김미남 설치미술 작가는 “작업실이라는 좁은 영역을 넘어 생각의 폭을 넓히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정원연 공공미술 작가는 “내 창작이 사회에서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실험하고 배우는 기회가 됐다”고 설명했다.

참여 기업과 기관, 예술인도 매년 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사업이 처음 시행된 2014년 178곳이던 참여 기업·기관 수가 올해 300곳으로 크게 증가했다. 참여 예술인은 같은 기간 331명에서 1000명으로 세 배 이상으로 늘었다. 예술인과 요청 기업·기관을 중개하는 지원기관도 지난해 KOTRA, 농협은행, 한국메세나협회 등 3곳에서 올해 한국산업단지공단, 문화예술위원회 등 2곳이 늘어 모두 5곳이 됐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