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방의 틀로 협소하게 봐선 안돼"…朴정부 軍출신 독식 '반작용'도
경선때부터 '외교책사' 역할…북핵외교·韓美FTA 대응전략 설계 전망

문재인 대통령이 초대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인선을 놓고 장고를 거듭하던 끝에 21일 '정의용 카드'를 최종 낙점했다.

문 대통령이 공식 취임한지 11일만이다.

북한의 미사일 도발과 한·미 정상회담 준비 등 외교안보 현안이 산적한 상황에서도 신중에 신중한 끝에 대선 경선 때부터 함께 해온 '외교책사'를 안보실장에 기용한 것이다.

문 대통령이 외교안보 컨트롤타워인 안보실장에 정통 외교관 출신인 정의용 전 주 제네바 대사를 임명한 것은 앞으로 '외교' 중심으로 안보정책을 운영해 나가겠다는 일종의 '방향타'를 제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단 문 대통령은 취임 직후부터 안보실장 후보군에 속한 몇몇 인물들을 놓고 심도 있는 검토를 진행해왔다.

정 전 대사를 비롯해 김대중·노무현 정부 대북·대외정책에 깊숙이 관여했던 문정인 연세대 명예특임교수, 주 러시아 대사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지낸 위성락 전 대사 등 외교관과 학자 출신이 우선 고려대상이었다.

자천타천으로 육군대장 출신 백군기 전 의원과 지난 2011년 '아덴만 작전'을 이끈 황기철 전 해군참모총장 등도 거론됐었다.

그러나 박근혜 정부에서 안보실장 자리를 독식했던 군(軍) 출신이 남북 관계와 주변 4강 외교를 제대로 풀지 못했다는 비판론이 제기되면서 군 인사들은 초기부터 배제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4일 북한의 미사일 도발 이후 군 출신 인사 기용의 필요성을 거론하는 목소리도 나왔지만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북한 핵문제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문제를 비롯한 복잡한 외교현안을 풀어내려면 외교적 역량과 경륜을 갖춘 인물이 외교안보 사령탑을 맡아야 한다는 쪽으로 분위기가 잡혔다.

이에 따라 정 전 대사와 문 교수 쪽으로 최종 후보군이 압축됐고, 문 대통령은 고심 끝에 경선 때부터 호흡을 같이해왔던 정 전 대사를 안보실장으로 최종적으로 결정했다.

문 대통령은 정 전 대사와 함께 최종 복수후보로 검토하던 문 교수를 자신의 외교안보 철학을 함께 구현할 수 있는 인물로 평가하면서 상당한 애정을 표시했다는 후문이다.

특히 문 교수는 폭넓은 외교 인맥과 식견을 갖추고 미국 워싱턴과 중국 베이징 외교가에서도 높은 평가를 받는 국제정치학자로 인정받고 있다.

그러나 인사검증 등의 결과까지 포함해 안보실장으로서의 적임 여부를 면밀히 따지던 문 대통령은 결국 정 전 대사를 안보실장으로 낙점하고 문 교수는 홍석현 한국신문협회 고문과 함께 통일·외교·안보 특별보좌관에 임명했다.

문 대통령은 문 교수와 홍 고문에 대해 "새 정부의 통일·외교·안보 정책 기조와 방향을 저와 의논하고 함께 챙길 것"이라고 말했다.

문 대통령이 안보실장에 '정의용 카드'를 낙점하면서 앞으로 문재인 정부 대외정책의 중심기조는 '외교' 쪽에 방점이 찍힐 가능성이 커 보인다.

북한의 도발과 위협에는 국방 차원의 강력한 대응이 이뤄져야 하지만, 북한과 주변 4강(强) 등을 상대로 한 '능동적 외교'를 통해 북한의 핵포기와 태도변화를 끌어내는데 역량을 집중할 것이라는 관측이다.

바꿔말해 '국방안보'보다는 '외교안보' 쪽으로 전략적 키워드가 바뀔 것이라고 청와대 관계자들은 전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안보실장 인선 배경을 설명하면서 "과거 정부에서는 안보를 국방의 틀에서만 협소하게 바라본 측면이 있었으나 저는 안보와 외교는 동전의 양면이라고 생각한다"며 "북핵 위기에서는 안보에 있어 외교의 역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오늘날 안보의 개념이 확장적이고 종합적이어야 하는 이유"라고 강조했다.

국방과 외교분야를 아우르는 새로운 안보의 개념에서는 정 전 대사가 안보실장으로서 분명한 적임이라는 게 청와대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정 전 대사는 외교가에서 '올라운드 플레이어', '팔방미인'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외교관으로서 다양한 경력과 전문성을 쌓아왔다.

다자외교와 통상, 경제 쪽에서 잔뼈가 굵었지만 한·미관계와 북핵 등과 관련한 정무적 외교감각이 탁월하고 외교부 대변인까지 지내면서 대(對) 언론 감각도 갖춘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히 2004년 17대 총선에서 열린우리당 비례대표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이후에는 의원외교에 힘을 썼고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의원연맹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대선 캠프에서는 전직 외교관 그룹인 '국민아그레망'을 이끌며 선거를 도왔고, 대선 승리 이후에는 청와대 외교안보 태스크포스(TF)를 맡아 주요국과의 외교관계를 초기 '세팅'하는 데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정 신임 실장은 외교장관 후보자로 지명된 강경화 유엔 특보와 호흡을 맞춰 북핵 문제를 양자·지역·다자 차원에서 풀어나갈 '그랜드 디자인'을 설계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요구 등에 대처하는 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된다.

당장 6월 말로 예정된 한미 정상회담 준비가 정 실장에게 주어진 당면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 기자 rhd@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