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주의 민낯 보여주려 증언문학에 몰두"
“소박하고 작은 사람들의 시각으로 공산주의의 민낯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작은 사람들, 즉 평범한 시민은 항상 국가의 이용 대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들이야말로 역사의 영웅이자 주인공입니다.”

201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스베틀라나 알렉시예비치는 19일 기자간담회에서 “거대한 역사 속에서 작은 사람들의 인생은 쉽게 간과되지만 이들의 역사가 사라지지 않도록 나는 글을 쓴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오는 23~25일 열리는 ‘2017 서울국제문학포럼’에 참석하기 위해 방한했다. 대산문화재단과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주최하는 서울국제문학포럼은 2011년에 이어 네 번째 열리는 문학포럼이다. 올해는 해외 10여 개국과 한국 작가 50여 명이 함께 ‘새로운 환경 속의 문학과 독자’를 주제로 내걸고 토론한다. 방한에 때맞춰 알렉시예비치의 신간 《아연소년들》도 지난 18일 한국에서 번역 출간됐다.

벨라루스 국적의 알렉시예비치는 참전 여군의 목소리를 담은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체르노빌 원전사고 피해자 이야기인 《체르노빌의 목소리》 등을 통해 국가적 재앙으로 인간적 존엄이 짓밟힌 이들에 대한 글을 써왔다. 그는 피해자들을 직접 만나 생동감 있는 증언을 듣고 글을 쓴다. ‘목소리 문학’으로 불리는 독특한 문학 장르다.

알렉시예비치는 “책 한 권을 쓰는 데 보통 5~10년이 걸린다”고 말했다. 증언자의 목소리를 모두 담는 데 들어가는 시간이다. 그의 책 한 권에 등장하는 증언자는 200~500명이다. 한 사람을 적게는 다섯 번, 많게는 일곱 번씩 만난다. 그는 “인터뷰를 시작한 지 5년 정도 되면 비로소 책의 줄거리에 대한 감이 온다”고 말했다. 인터뷰 내용에서 진실을 걸러내는 작업도 필수다. “대부분 증인은 옛 소련의 프로파간다(선전)에 물들어 있었습니다. 제 저술 작업에 가장 중요한 원칙은 ‘진실’입니다.”

방대한 작업을 통해 작가는 전쟁 속에서 인간의 존엄성이 어떻게 짓밟히는지 여실히 보여준다. 그는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어려운 일인가에 주목한다”며 “21세기에 죽어야 할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이념이나 이상”이라고 말했다.

42년간 만난 수백 명의 인터뷰 대상자 중 얘기 듣는 것조차 힘들었던 사람은 2차대전 당시 게릴라 전투에 참전했던 소련 여군이었다고 작가는 고백했다.

“독일군에 포로로 잡혔던 그는 독일군이 포로를 얼마나 잔인한 방법으로 죽였는지 설명했어요. 제가 깜짝 놀라자 그는 ‘그건 아무것도 아니다’며 독일군이 소련 침공 때 소련 아이나 아이 엄마를 아무렇지도 않게 불태워 죽이곤 했다고 말했죠. 전쟁터에서 총을 들고 서 있는 한 아름다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알렉시예비치는 42년간 전쟁과 원전 피해자들의 목소리를 들었고 알렸다. 작가의 노력으로 피해자들의 고통이 조금이나마 줄어들었을까. 그는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순수문학으로 한순간에 사람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건 천진한 생각입니다. 사람들이 국가에 속았고, 착취당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겠죠.”

그간 전쟁의 참혹함에 대해 써온 알렉시예비치의 다음 작품 주제는 ‘사랑’이다. 그는 “‘끔찍하고 광기스러운 작가로서의 내 인생을 어떻게 끝낼까 고민하다 이제는 인간의 행복에 대해 써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을 때 스웨덴 왕실에서 다음 작품에 대해 물어서 ‘사랑에 관해 쓰겠다’고 답했습니다. 옆의 수행원이 ‘이제 아픔 없는 글을 쓰겠네요’라고 하더군요. 저는 ‘사랑엔 아픔이 없느냐’고 되물었습니다. 사람은 늘 행복에 대한 향수를 가지고 있지만 행복은 결코 쉽게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심성미 기자 smsh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