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정부에 바란다] '경제 따로 외교 따로' 칸막이 걷어내야
세계 통상환경이 급변하고 있다. 힘의 우위에 바탕을 둔 보호주의 파고가 세계 경제를 덮치면서 세계무역기구(WTO)를 중심으로 하는 다자통상체제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이나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TTIP) 등 메가 자유무역협정(FTA)을 통해 새로운 국제규범을 제정하고 이를 토대로 다자체제를 견인하려던 미국과 일본, 유럽연합(EU)의 대안적 시도 또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등장과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 결정으로 교착상태에 빠졌다. 동시에 기존 협정의 수정 또는 양자 협상을 통한 일자리 창출, 개방 피해자에 대한 사회적 안전망 확보 등이 많은 나라에서 통상정책의 최우선 과제로 떠올랐다.

이 같은 환경 변화 속에서 이제 막 출범한 문재인 정부는 앞으로 통상정책을 어떻게 가져가야 할 것인가. 첫째, ‘전략적 통상정책’을 주문하고 싶다. 그동안 많은 정책당국자들이 금과옥조처럼 떠받들어왔던 ‘정경분리의 원칙’은 과감하게 폐기해야 한다. 우리나라 대외정책의 고질병은 어떤 일이 발생하면 소관부처를 중심으로 오직 그 이슈에 대해서만 정부가 입장을 정하는 ‘지극히 배타적이고도 단순한 의사결정방식’에 있다. 가령 미국이 안보적으로 한국에 사드(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원하면 “중국의 경제보복에 대해선 미국이 책임져라”라는 식으로 경제적 요구를 협상에 반영했어야 한다는 의미다. 통상이나 외교, 안보 혹은 산업 이슈들을 서로 연계해 범(汎)정부 차원에서 복합적으로 그리고 전략적으로 문제를 풀어가는 능력이 우리에겐 부족하다. 극심한 부처이기주의에 함몰돼 대외경제장관회의나 국무회의에서조차 다양한 사안들을 연계해서 조정하는 일이 매우 어렵다고 한다.

둘째, ‘포용적 통상정책’을 펼쳐나갔으면 한다. 대기업과 수출산업 위주의 통상정책은 추동력을 잃기에 이르렀다. 소비자와 개방의 피해자들을 함께 끌어안고 나아가지 않으면 국민과 국회의 지지를 얻을 수 없다. 신정부는 우선 우리가 맺은 기존 15개 FTA의 파급효과를 일반 국민과 자영업자, 중소기업 및 피해 산업의 처지에서 엄밀하게 평가해주길 바란다. FTA 체결로 좋은 일자리가 몇 개나 만들어졌고 소비자는 가격 인하 혜택을 얼마나 보게 됐는지, 개방의 실제 피해액은 얼마이고 보상은 합리적으로 이뤄졌는지에 대한 객관적인 분석과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아울러 ‘좀비 중소기업’을 양산하는 무역조정지원제도뿐 아니라 국영무역이니 수입권 공매니 하는 농산물 수입관리 방식을 통해 FTA 가격 인하 효과를 차단하고 도시 소비자들을 울리는 정부의 각종 정책들은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

끝으로 ‘미래지향적 통상정책’에 역량을 모았으면 한다. 중국 주도의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이나 한·중·일 FTA에 끌려다니기보다는 4차 산업혁명 시대, 미국 실리콘밸리와의 협업과 공동 생태계 조성 혹은 의료, 교육, 보건, 미용, 관광 등 국내 우수 자원을 활용한 서비스 수출에 정부가 더 큰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를 위해 과감한 규제개혁은 물론이요 제주도 전체를 ‘한국어·중국어 공용 지역’ 혹은 부산을 ‘한국어·일본어 공용 지역’으로 선포해 수많은 중국인과 일본인을 국내로 끌어들이는 등 획기적이고도 창의적인 서비스 수출전략이 나왔으면 한다.

문재인 정부 앞에는 북핵, 사드배치, 한·미 FTA 재협상, 중국의 경제보복, 한·일 관계 복원 등 굵직한 국제 이슈들이 난마처럼 얽혀 있다. ‘경제 따로 외교 따로’가 아닌, 부처 간 적극적 소통을 통해 다양한 협상 카드를 확보하고 이에 기초해 통 큰 ‘패키지 딜’을 성사시킬 수 있는 대외 거버넌스 체계 구축이 절실하다. 사회적 약자를 보듬고 동시에 미래를 열어가는 신정부의 따뜻한 정책과 과감한 개혁을 기대한다.

허윤 <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