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셰일원유가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을 빈사 상태로 몰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OPEC 최대 산유국인 사우디아라비아 주도로 OPEC 비회원국인 러시아까지 가세하면서 감산에 나섰지만 미국의 증산으로 그 효과가 사라져 버렸다.

올해 들어 서부텍사스원유(WTI) 가격은 1월 초 배럴당 56달러를 넘어서며 ‘반짝’ 상승했지만 이후 하락세를 거듭하며 4개월여 만인 이달 5일에는 45달러 선까지 무너졌다. 전문가들은 유가 상승으로 손익분기점을 넘어선 미국 셰일원유 업체가 대거 생산에 복귀하면서 가격을 끌어내렸다고 분석했다.

미국의 원유 생산량은 지난달 마지막 주까지 11주 연속 상승세를 기록하며 2012년 이후 최장기 랠리를 이어가고 있다. 하루 생산량은 930만배럴로 연초 880만배럴과 비교해 5% 넘게 증가했다. 미 에너지정보청(EIA)은 내년에는 하루 990만배럴까지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블룸버그통신은 그동안 배럴당 50달러 선에서 공방을 벌이던 유가가 최근 5거래일 동안 11%에 달하는 가파른 하락세를 보인 이유로 좀체 줄지 않는 재고를 꼽았다. 감산을 시작한 지 4개월이 지났지만 원유 재고가 줄어들지 않자 시장이 비관론에 빠졌다는 것이다. 릭 스푸너 CMC마케츠 수석시장분석가는 “감산이 재고 수준을 낮추는 데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실망감이 커지고 있다”며 “유가가 배럴당 40달러 밑으로 향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휘발유 재고 역시 성수기에 접어들었지만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 지난주 미국 휘발유 재고는 190만배럴 감소했을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19만1000배럴 늘어나며 3주 연속 증가세를 이어갔다.

감산 효과가 없어지면서 OPEC의 시장 장악력이 급속히 약화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파이낸셜타임스는 “OPEC이 미국의 셰일원유업계를 제압하고 공급 과잉을 해소할 것이라는 믿음이 사라지고 있다”고 전했다.

외신은 오는 25일 열리는 OPEC 정례회의에서 6월로 끝나는 감산 시한을 연장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다. OPEC 관계자는 “연말까지 감산이 연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뉴욕=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