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 깨고 문 부수는 학생들…서울대엔 '폴리페서'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
창문 깨고 문 부수는 학생들…서울대엔 '폴리페서'는 있어도 '스승'은 없다?
2일 오전 직접 둘러본 서울대 본관은 삭막했다. 전날 밤 이곳에서는 한바탕 공성전(攻城戰)이 벌어졌다. 시흥캠퍼스 실시협약 철회를 외치는 학생들은 사다리를 타고 본관 2층에 올라가 쇠망치로 창문을 부쉈다. 교직원들은 이들이 다른 층으로 올라가지 못하도록 계단으로 통하는 문을 자물쇠만 3개를 써 잠갔다. 몇몇 학생은 문을 열라며 소화기로 문을 내리쳤다. 지난밤의 흔적이 고스란히 문에 남았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은 2일 “본관 점거에 참가한 학생들에게 출교 등 최고 수준의 중징계를 내리고 창문을 깬 학생 등에 대해선 재물손괴 등의 혐의로 형사고발 절차를 진행하겠다”는 담화문을 발표했다.

작년 8월 서울대가 제2캠퍼스인 시흥캠퍼스 실시협약을 체결한 이후 1년 가까이 이어져 온 학내 갈등이 해결은커녕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학교 측은 153일간의 본관 점거, 학생처장의 자진사퇴 등 우여곡절에도 “대화로 해결하겠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그러나 지난 1일 두 번째 본관 점거(사진)가 이뤄지자 “이젠 선을 넘었다”며 징계절차에 들어갔다.

그동안 많은 전문가들은 서울대 사태 장기화의 원인을 소통 부족에서 찾았다. “일일이 학생들 의견을 묻기 힘들다”는 학교와 “학교의 주인인 학생은 학내 의사결정에 참여할 권리가 있다”는 학생 사이의 간극을 메워주는 대화가 부족했다는 얘기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소통 부족’은 갈등 발생의 원인이었을지언정 장기화의 원인은 아니었다. 대화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는 여러 번 있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소통의 효용에 회의적이다. 올해 1월 학교 측이 학생대표의 이사회·평의원회 등 학내 의결기구 참여를 골자로 한 대타협안을 내놨지만 학생들은 “철회 외엔 답이 없다”며 거부했다.

사태가 이런데도 고운 소리든 쓴소리든 제자들을 다독이며 사태 해결에 힘을 보태는 스승은 찾기 힘들다. 교수 2100여명은 자신의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앞당겨진 대선을 앞두고 유력 후보자에 대한 줄서기와 연구 업적 홍보에 열중인 ‘폴리페서’들만 눈에 띌 뿐이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열중인 몇몇 교수는 사회적 이슈만 생기면 온갖 쓴소리를 온라인에 쏟아낸다. 그러나 시흥캠퍼스 사태에 한 번이라도 진지하게 의견을 밝힌 교수는 아무도 없다.

교수들은 ‘교육자’라는 본연의 역할에도 충실하지 못했다. 1월 말 대학본부가 점거 주도 학생 29명의 징계 방침을 밝히자 서울대 민주화교수협의회(민교협)는 “징계는 비교육적”이란 내용의 성명을 발표하며 본부 비판에만 열을 올렸다. 평교수 700여명이 사태의 평화적 해결을 촉구하는 성명을 낸 것도 이 즈음이다. 이후 3개월 넘게 갈등이 이어졌지만 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때로는 엄하게 꾸짖는 교수는 보이지 않았다.

“시흥캠퍼스 사태가 남긴 최악의 유산은 파국적 결말 그 자체가 아니라, 우리 시대 스승이 실종됐음을 교수들 스스로 보여줬다는 것이다.” 한 서울대 교수의 씁쓸한 고백이다.

황정환 지식사회부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