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에 영국의 공식 탈퇴(브렉시트)를 신청한 테리사 메이 영국 총리가 유럽 안보 문제를 협상 카드로 활용할 수 있음을 시사해 논란이 일고 있다. EU 관계자들이 “지금 협박하는 것이냐”며 분개하자 영국 정부는 “그런 뜻이 아니었다”며 뒤늦게 진화에 나서고 있다.

메이 총리는 29일(현지시간) EU에 보낸 여섯 쪽짜리 편지 형태의 ‘(회원국 가입) 철회 의향서’에 “협상 실패는 범죄·테러리즘과의 싸움에서 우리의 협력이 약화된다는 뜻일 수 있다”고 적었다. 무역·이민 등의 문제에서 협상이 결렬돼 ‘무협정 탈퇴’할 경우 안보 문제에서도 협력하지 않을 수 있음을 암시한 것이다.

앰버 러드 영국 내무장관이 불에 기름을 끼얹었다. 그는 “영국이 EU의 범죄대응기구인 유로폴에 가장 많은 정보를 기여하고 있다”며 “우리가 떠나면 우리 정보도 챙겨갈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무역 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기 위해 국경을 넘나드는 범죄 대응에 협조하지 않을 수 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유럽의회 사회민주당 대표인 지아니 피텔라 의원은 “사람의 생명을 가지고 장난친다면 충격적”이라며 “그것은 협박”이라고 비난했다. 영국 내에서도 비판이 일고 있다. 팀 패런 자유민주당 대표도 “뻔뻔한 협박”이라고 했다. 이베트 쿠퍼 영국 노동당 의원도 “(안보 비협조는) 자해행위”라고 지적했다.

영국 정부는 부랴부랴 그런 취지가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다. 메이 총리의 대변인은 “무협정 탈퇴하게 되면 안보 분야 약속도 차츰 약화될 것이 명백하다는 뜻”이라고 수위를 낮췄다. 메이 총리도 이날 BBC 방송에 출연해 “이 문제(안보)에 관해서는 현재 협력 수준을 유지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그러나 한 EU 외교관은 “영국이 가진 협상 지렛대는 돈과 안보 두 가지이며, 돈을 많이 안 내겠다면 안보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예상된 수순”이라고 했다.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영국과 유럽은 주로 EU가 아니라 다른 기구를 통해 안보 문제에 협력하고 있다. 군사적으로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를 통하며, 정보기관들은 ‘4개의 눈’(유럽 4개국), ‘14개의 눈’(14개국), ‘베른클럽’(영국, 27개 EU 회원국, 노르웨이, 스위스) 등을 통해 정보를 주고받는다. EU와의 협상장에서 써먹을 카드가 생각보다 많지 않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